서울대학교 설치 1 과목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2021 봄학기 설치 1 수업을 들었던 김영현입니다. 교수님이 전시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민언니와 함께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교수님을 한 번 더 뵙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편지를 써봅니다. 저에게는 보내지 못할(혹은 않을) 편지를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편지 또한 그렇습니다. 종강 후 다시 만나지 못할 교수님께 보낼 편지 내용을 머릿속으로 한번 써 보았는데, 생각이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글로 써 놓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편지 전체를 한번 완성해 놓고 나서 저의 기억 한 켠에 잘 접어 두었다가, 교수님의 전시 소식을 듣고 비로소 글로 꺼내 봅니다. 글로 꺼내 놓고도 종이에 인쇄하여 전달하는 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저는 요즘 책을 읽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작가들의 생각을 구경하고 또 스스로 생각을 해보면서 제가 마주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쪼개고 어떤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에 대한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상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가 지금 당장이 아닌 보다 먼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제가 작업을 하기에 너무 어리석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작업은 꼭 나이테 같습니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 매년 그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 믿고 있었던 것들, 의문을 가졌던 것들을 주제로 저는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했던 것이 전혀 중요해지지 않기도 하고, 아주 어리석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것들을 믿은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업은 매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까 말했듯이 마치 나이테를 새기는 작업과도 같고, 미숙한 나이이지만 나잇값을 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만을 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 물어 마땅하다고 느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하고, 그런 의무감에서 저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꾸 마음이 그리로 향하는 문제들을 그 때의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이야기의 깊이는 제가 살아온 삶과 경험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그래서 요즘 어른들이 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로 고전 문학이나, 프랑스 작가들의 산문 집 등을 읽으며 작가들의 생각을 구경합니다. 저는 작업으로 발전시키기 전에 저의 생각을 글로 써 놓는데, 이 글들은 일년만 지나도 아주 어리석은 생각들로 변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저는 이 문제 - 스스로의 어리석은 모습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일년 후면 부끄러워질 작업을 해야 하는 일 – 에 부딪히며 괴로움을 겪었는데, 이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 소설을 쓸까 합니다. 주인공은 한 여자이고, 이 여자는 어리석습니다. 주인공은 완벽할 필요 없으니 그녀의 이런저런 엉뚱하고 위험한 생각을 소설이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마음껏 펼쳐볼까 합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저의 지난 작업 팝콘행성도 이러한 저의 특성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가상의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실천하고 사람들을 모아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지구, 현실을 떠나 상상 속 공간에서 벌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싸울 확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수업은 저에게 참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수님에게 저는 단지 한 학기 수업한 학생 중 한명인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런 저의 진심을 고백하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그 수업을 듣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 번도 현대 미술을 저의 영역 안의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저는 이제 현대 미술 작가를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보는 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기록하고 곱씹고,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여러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내 멋대로 생각한 후 나름의 기준에 맞추어 슬쩍 점수도 매겨봅니다. 그러면서 저만의 기준을 만들어보려고도 합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며 저를 삶을 사는 데에 집중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장황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이미지가 더 ‘힙’한지, 타이포그래피의 자간과 행간, 대지의 레이아웃에서 밀리미터의 위치 이동을 가지고 고뇌하는 대신, 저는 이제 제 자신을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후자의 작업이 더 쉽다거나, 저의 적성에 더 맞다거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해주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러한 삶이 스스로의 마음에 들고,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갈증, 작업에 대한 다소 지나치기도 한 진정성,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과 균열에 대한 물음, 탐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얹어 제가 고민할 수 있는 것을 잘 고민하고, 잘 내뱉고 싶습니다. 디자인적 지식이 저의 개성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합니다. 이 긴 편지를 갑자기 읽게 될 교수님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저의 엉망진창 편지이지만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는 한국어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교수님의 따님이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댓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쓰고 유치원을 다녀야 하는 유치원생의 삶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저는 유치원때 마음에 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깨물고 다녔기 때문에 마스크가 있었다면 큰 걸림돌이었을 것입니다)과 함께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교수님의 전시가 기대가 됩니다. 감사하다는 말씀과 응원의 마음을 함께 보냅니다.
2021. 9월 영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