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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Sep 05. 2021

악몽


검은 셔츠를 입은 바텐더가 나에게 다가와 주문 한 적 없는 압생트를 내 것이라며 건넨다. 나는 그에게  이 술을 시킨 적 없다고 말했으나 그는 이 술은 내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술을 몇 모금 마시자, 나의 몸뚱이가 기우는 대신 바 전체가 기울었다. 나는 바닥에서 미끄러져 30cm가량을 이동했고, 다시 내가 앉아 있던 의자로 기어 올라왔다. 바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나를 취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늙은 남자가 주방에서 나오더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 조그마한 바의 사장인 것 같다.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사이비 종교로 추정되는 교리를 내게 들려준다.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왔다.


집에는 알 수 없는 물고기들로 꽉 찬 알 수 없는 어항이 있었다. 이 어항 또한 내 것이 아니다. 이 어항 속의 물고기들에게 한 달 가까이 아무도 먹이를 주지 않았는데 물고기들은 죽지도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어항 옆에 있는 먹이를 조금 집어 어항 위로 엄지와 검지를 비틀어 먹이를 막 뿌리려는 찰나에 참을성 없는 물고기들이 밖으로 뛰쳐나와 내 손가락을 문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가락을 등 뒤로 감추었다.


나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다. 공용 거실과 부엌이 있고 세 개의 침실이 있는 구조다. 나는 나의 적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그들은 내가 여기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나의 방문에 큰 도어락을 달고, 나머지 두 사람이 잠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밤에만 잠깐 밖에 나갔다 올 뿐이었다. 현관문에는 도어락이 없었다. 집 밖보다 집 안이 더 위험해서 그렇다. 나는 나의 적들과의 동침으로 부터 그동안 사회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야생에서 쫓기는 듯한 원초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책이나 읽으며 사는, 실제 세상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고, 지식은 많으나 경험은 없는, 바보 같은 처녀의 삶을 제발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이 신은 예수가 아니었으니 한 사이비 종교의 신을 빌린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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