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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Sep 09. 2021

내 머릿속에는 햄스터가 산다 #4

1부 시나

"요코. 오늘 왜 학교 안나왔어?"

"늦잠 잤어. 오늘 수업 진도 많이 나갔어?"

"아니 별로. 어려운 내용도 없었어. 출석 부를 때 너 목소리 따라하려다가 교수님한테 걸렸지 뭐야"

"ㅋㅋㅋ바보. 고마워. 내일 시간 맞으면 점심 같이 먹어"

"그래 내일 연락할게"


나는 강의실을 나오며 요코와 짧은 문자를 주고 받았다. 내일 요코와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건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이고 내일의 나는 어떨지 모른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밖에 없는, 수업이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날이다. 얼른 집으로 가서 약간의 여유를 만끽해준 후,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들를 것이다. 이 카페는 커피도 맛있지만 직접 쿠운 쿠키가 아주 맛있는데 종류도 여러가지이다. 쿠키에 콕콕 박힌 건포도들이 보내는 시큼한 윙크를 생각하니 기분이 들떴다. '쿠키를 포장해서 집에서 밀크티와 함께 먹어야지.' 나는 생각했다.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에는 아스팔트에 발이 묶인채로 박혀있는 것 처럼 보였던 나무들이 이제는 포슬포슬 피워낸 잎들을 받치고 있는 행복한 정령처럼 보였다. 나무는 정신없는 도시 사람들의 정수리를 구경하며 옆자리 나무와 수다를 떨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시골에서 뽑혀와, 불쌍한 도시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지 않도록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인데 비록 공기가 좋지 못하고,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과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지만, 덜 심심한 삶을 살게 되었다. 나무에게 입이 있었다면 "길거리에서는 뛰지 말고 얌전히 걸어다녀! 껌도 그만 뱉고, 쓰레기는 각자 집으로!"라고 소리치고는, 도시를 조용히 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기분에 따라 보이는 것들에 멋대로 이야기를 붙여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이 이야기의 관객은 나 혼자 밖에 없도록 입단속을 잘 해야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게되면 나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 카페는 아주 조그맣다. 아기자기한 타일이 바닥에 깔려있고, 벽에는 카페의 주인이 유학 시절 찍어온 이국적인 도시의 사진이 군데군데 걸려있다. 진열장에는 먹음직스러운 쿠키들이 줄지어 있었다. 벌써 더블 초코칩 쿠키와 라즈베리 마카롱은 다 나가고 없었다. 다행히 내가 아까 먹으려고 계획했던 레이즌 오트밀 쿠키는 남아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카페에는 커피를 사러 온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주문하기 위해 어느 덩치 큰 남자 뒤로 줄을 섰다. 내 앞의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 근육이 얇은 면 티셔츠 위로 울룩불룩 솟아 있었다. 나는 덩치 큰 사람이 싫다. 그들의 움직임은 위협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덩치 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자꾸 그리로 신경이 쓰이고, 그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덩치 큰 사람들을 보면 '저 팔로 맞으면 무지 아프겠지', '왜 한 명이서 저렇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거야', '걸을 때 마다 정강이로 바람이 일면서 쉬익쉬익 소리가 날거야' 등의 생각이 떠올랐다. 앞의 남자가 칠칠치 못하게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다가 떨어트리고 말았다. 나는 지갑 가죽이 타일을 찰싹 때리는 소리에 놀라 뒤로 펄쩍 뛰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그 남자가 나에게 말하고 지갑을 주웠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내가 일주일에 한번 뿐인 여유로운 날이 카페 씬을 예쁘게 채색하고 있었는데 앞자리에서 그림그리던 어떤 덩치가 붓의 물기를 여기저기 튀기며 털어냈기 때문이다. 눈치 없이 튀어온 물방울들이 내 종이를 우글우글 울린다. 나는 이 망가진 그림은 버리고 새로 그리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일단 저 덩치가 없어져야 한다. 나는 내 앞의 남자가 제발 커피든 디저트든 테이크 아웃을 하기를 마음 속으로 바랬다. 그러면 나는 계획을 살짝 바꿔서 쿠키를 카페에서 먹고 갈 것이고, 그렇게 저 덩치가 없는 카페를 즐기다 가는 것으로 장면을 바꿔 그릴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포장이요" 앞의 남자가 말한다. 그는 방금 주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하고서는 자리에 가서 앉는다. 나는 속으로 예스를 외쳤다. "주문하시겠어요?" 아르바이트 생이 나에게 묻는다. "오트밀 레이즌 쿠키 하나랑 따뜻한 라떼 한잔이요. 여기서 먹고 갈게요" 내가 말했다.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카드 지갑에서 카드 한장을 꺼내 계산하고는 쿠폰에 도장도 하나 받았다. 이제 도장을 한개만 더 모으면 음료 한잔이 무료이다. 나는 덩치가 어디에 앉았는지 슬쩍 보고서는 창가 바 테이블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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