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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Sep 03. 2021

내 머릿속에는 햄스터가 산다 #3

1부 시나

교실로 들어가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은 요코가 오지 않았다. 나는 요코가 아니면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 말을 걸거나 인사할 만한 사람이 없다. 요코는 외국인이고, 유학생이다. 우리 학교에는 외국에서 유학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므로, 요코는 학창 시절 전학생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그녀가 강의 첫날 혼자 앉아있던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이후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9시 정각이 되자 교수님이 곧 들어오더니 강의를 시작했다. 교수님은 아침 수업인데도 흐트러진 기색이 하나 없었다. 얼굴에는 파운데이션이 얇게 발려있었고 갈색 눈썹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었으며, 회색빛 분홍색 립스틱이 입술 선을 따라 똑바르게 칠해져 있었다. 옷은 하얀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입기 전에 다려줘야 하는 옷을 상하의로 갖춰 입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소름이 약간 끼쳤다. 교수님은 나랑 같은 나이라 하더라도 절대 친구는 못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수업은 yBa 관한 이야기였다. 교수님은 yBa 어떻게 대처리즘을 통해 영국에서 성공적인 아트 브랜드 집단이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나는 어떻게 하면 멍을 때리면서 교수님의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일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윈터가 나를 당겼다. 윈터는 이렇게 나를 종종 당기고는 하는데,  머릿속에 약간의 여백 -그녀가 뛰어다닐  있을 만한 정도의 크기-  생기면 나를 당긴다. 내가  머릿속으로 이끌려 들어갔을  윈터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리저리 구르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윈터의 동작은 너무나 빨라서 마치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처럼 보였다. 나는 윈터에게 무슨 일이냐 묻고 싶었으나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윈터에게 말을 건네는 법을 모른다. 윈터에게 말을 하려면  머릿속에다가 말을 해야 하는데, 아직 나의 말들을 머릿속에 울려 퍼지게 하는 요령은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말을 건네는데 실패한 나는 손을 뻗어 윈터를 진정시켜 보았다. 먼저 등을 슬쩍 짧게 쓰다듬고는 검지지그시 누르며 쓰다듬었다. 윈터가 뛰어다니는 것을 멈춘 후에는  손바닥 위에 그녀가 올라탈  있도록 손을 건넸다. 윈터는 이제 통나무를 굴리듯이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기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손바닥에서 손등으로, 손등에서 다시 손바닥으로. 그녀의 이러한 반복적인 움직임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내 머릿속에 다른 햄스터는 없다. 윈터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었으면 싶지만, 다른 햄스터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윈터는 혼자 내 머릿속에서 순간순간을 보낸다. 윈터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나는 윈터에게 말을 건네는 법을 모르므로 우리가 하는 상호작용은 나의 손짓과 윈터의 몸짓을 통해서만 일어났다. 그녀가 뚱뚱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뛰어다니는 동선, 그녀의 따뜻하고 말랑한 몸통의 촉감, 새까만 후추 알이 박혀 있는 듯한 눈 두 개가 향해 있는 곳을 나는 알게 된다. 그녀는 아마 내가 예측컨데, 내 다섯 손가락의 움직임, 그것들의 속도와 굵기, 손가락들이 어떠한 정렬을 만들거나 모양을 흉내 내는지 정도를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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