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어달라고 한다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지어낸다
시간이 흐른다
듣는 이는 읽은 이를 그리워하며 그 시집을 찾는다
듣는 이가 기억하는 것은 쓰인 적 없던 한 문장뿐이다
듣는 이는 그 한 문장을 읊으며 시집을, 시집을 통해 기억 속의 읽은 이를, 읽은 이를 통해 듣던 자신을 찾으려 한다.
듣는 이는 시집도 읽은 이도 자신도 만나지 못한다
손글씨로 쓰인 이 문구를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하는데 이건 주인공 남자가 자신의 일기장에 쓴 소설이다
듣는 이는 자주 울곤 했던 남자, 읽은 이는 스스로의 여성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모성애를 지닌 여자이다. 여자는 과거에 다른 남자에게 상처받아 스스로의 여성성을 거부한다. 남자는 여자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그 모성본능을 갈구한다. 남자는 여자 앞에서 우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지 못한다. 그저 여자를 찾아 헤매었던 과정에서 만난 다른 여자들에서 그 여자의 부분을 언뜻 보았을 뿐이다. 남자에게 여자들은 결국 그 여자만큼은 그 여자이지 못한, 틀린 여자들일뿐이다. 남자는 여자들을 울리고 다닌다.
여자는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우는 남자가 없어지자 다시 스스로 울게 된다. 가끔 허전할 땐 남자들이 자신을 울리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다 남자와 여자는 다시 만난다. 오버스럽지도 극적이지도 않게 너무 늦지도, 타이밍 나쁘지도 않게. 이젠 여자도 남자도 울지 않는다. 둘은 이제 대부분 멍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둘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불 같았을 때의 모습을 목격하고 기억해 주는, 그 순간들을 함께한 상대를 사랑의 기념품 혹은 증거물, 그 단어도 싫다면, 리멤브럴처럼 두고 있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