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B번지와 비밀의 승강장

런던, 문화의 도시에 젖어들다

by 키위

런던 도심으로 방향을 틀어 마지막 탐험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종이책으로 추리소설을 접하고 훗날 영국 드라마 <셜록>에 빠져든 진성 팬으로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텔레비전에 등장했던 스피디 카페에 영업 종료 십 분 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문턱을 넘은 사실에 안도하며 땀방울을 닦아냈다. 마침내 실내를 구경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담한 규모에 놀라면서도 사진들을 살피며 감동이 밀려왔다. 드디어 성덕이 되었다며 친구와 십 대로 돌아간 듯 꺄르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브라운관 속 공간에 발을 들이며 비로소 <셜록> 촬영지를 밟았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평범한 식당도 애정을 덧입히니 성지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했다. 영상 속 장면에 스며드는 즐거움을 누리며 머릿속 상상이 눈앞에 펼쳐져 가슴이 다시 한번 벅차올랐다. 탐정의 흔적을 더듬은 뒤 <해리포터>를 만나기 위해 외곽으로 향했다.




일상의 풍경을 지우고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에서 짜릿함을 맛보았다. 스튜디오를 향해 버스에 몸을 실으니 설렘이 배가 되었다. 문자로 그렸던 마법 세계의 촬영장을 눈으로 탐색하며 거대한 뒷모습을 훑었다. 활자의 바다를 헤엄치던 독자에서 출발해 스크린의 감동을 거쳐 세트장에 입성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각국에서 모여든 인파와 미소를 나누고 국경을 초월하여 열광을 공유하며 연대감을 느꼈다.


입장권을 쥐고 문을 통과해 미지의 세계로 들어설 때 가슴이 떨렸다. 허구의 세상을 마주하는 특권을 누렸다. 연회장 식탁부터 빗자루까지 솜씨로 빚어낸 조형물들을 응시했다. 화면 속 배경을 현실로 창조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을 제작진의 노력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 간직한 애정으로 상점에 진열된 지팡이와 코딱지 맛 젤리를 구경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새빨간 기차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벽을 뚫고 들어간 수레를 붙잡았다. 열차에 올라타는 설렘을 느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튀어나오는 배경에 환호성을 삼키며 발걸음을 이어갔다. 구조물을 둘러볼 때마다 감탄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을 향해 인사하는 벅빅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버터맥주를 들이켜며 회색빛 망토를 두른 호그와트 학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상상력을 되찾았다. 심장을 고동치도록 이끄는 무언가에 몰입하는 진리를 깨달았다. 어른의 껍데기를 벗어두고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만물을 관찰하는 환희를 맛보았다.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거닐며 감성을 채우고 동심에 빠진 사이 시간은 일곱 시를 지났다.




걸음을 서둘러 베이커 스트리트 221B 주소지를 향해 이동했다. 역 벽면에 새겨진 탐정의 실루엣을 마주했다. 어둠을 깔아둔 밤거리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매력을 뽐냈다. 영업시간을 지나친 탓에 내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불빛이 번지는 보도블록을 밟으며 가상의 사건에 대한 전말을 추리해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닫힌 문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로 위안을 얻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미련은 외부에 놓인 기념품들을 구경하며 씻어냈다. 'I AM SHERLOCKED' 문구가 선명히 새겨진 머그잔이 시야 끝에 아른거렸지만 눈에 담는 일만으로도 만족했다. 상점의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조명을 바라보았다. 아쉬운 발길을 돌리며 마지막 날의 여운을 달랬다.


거리를 누비며 여름날을 상상들로 엮어 냈다. 책과 영상을 넘나드는 동경을 찾아다니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좋아하는 장면들을 덧그리며 평범한 걷기를 특별한 기억으로 만들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뻐근함마저 열정을 불태운 훈장으로 여기며 여행의 끝자락을 뿌듯함으로 채웠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마음을 온통 빼앗겼던 작품들을 떠올리면 무료한 일상에 생기가 돈다. 순수한 동경을 품고 거리를 누비던 런던에서의 기억을 가끔 꺼내어 본다. 가슴을 뛰게 만들던 취향들을 되짚으며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운다.


별일 없는 하루를 마주할 때면 221B의 번지수와 비밀의 승강장을 조용히 불러본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쏟아내던 진심을 동력 삼아 오늘을 기분 좋은 설렘으로 채워 나간다. 평범한 순간들 사이로 마법 같은 기대감을 심어둔다. 사랑하는 것들을 가슴에 품고 단조로운 삶을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인다.


화,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