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랫퍼드어폰에어븐과 코츠월드
수백 년의 지성이 머물던 옥스퍼드를 벗어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이기에 400 주기 기념일이라는 시기를 맞이해 설렘이 배가 되었다. 뼈대를 드러낸 외관을 둘러보며 극작가의 탄생을 마주했다. 실내를 구경하는 대신 흙벽을 더듬으며 공간의 분위기를 깊이 간직했다. 언어의 뿌리를 빚어낸 숨결을 들이마시며 자취를 밟고 서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교감을 시도했다.
상자에 입장료를 모은 뒤 금고로 옮겨두었던 ‘박스오피스(Box Office)’의 기원을 경청했다. 밧줄을 조이고 자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인사말인 ‘잘 자(Sleep Tight)’의 유래도 주워 담았다. 단어의 출발점을 디디고 선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어휘들이 탄생한 배경을 헤아리며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수천 개의 문장을 창조해 낸 업적에 감탄을 쏟아냈다. 영어를 국어로 발돋움시킨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살피며 시작한 이야기들을 유산으로 다듬어낸 과정에서 탄성을 내뱉었다.
인간의 삶을 뛰어넘어 영혼을 울리는 힘에 존경을 표하며 강가를 걷는 사람들의 미소에서 휴식의 질감을 발견했다. 벤치에 앉아 무명 배우들의 열연을 지켜보며 예술이 살아있는 생동감을 체험했다.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배들을 바라보고 연극의 한 장면을 시연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작품에서 얻은 영감들을 마음속 배낭에 챙겨 넣고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문학의 향기를 머금은 채 코츠월드로 향했다. 볕 아래 돌담을 쌓아 올린 집들을 그림처럼 마주했다. 벌꿀색 벽돌을 손끝으로 느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들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버튼온더워터에 도착한 뒤 얕은 시냇물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물가에 모여앉은 사람들을 렌즈 너머로 간직하고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이들의 평온함에 오랫동안 시선을 두었다.
속이 비치는 얕은 수면을 바라보며 탁한 마음이 정화되었다. 대자연이 빚어낸 경관에 집중하며 생각들을 내려놓았다. 발목을 덮을 만큼 찰랑이는 물결과 부서지는 햇살을 응시하며 동화책 페이지를 넘기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개울물을 따라 거닐며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온전한 쉼을 즐겼다.
개울가를 벗어나 찻집으로 걸음을 옮겨 시골의 정취를 마주했다. 질박한 접시에 담긴 스콘을 갈라 잼을 얹었다. 따뜻한 홍차를 삼키며 몸을 데웠다. 화려한 만찬 대신 다과가 주는 편안함에 집중했다. 마을을 눈에 담으며 휴식을 완성했다.
공해를 모르는 대지 위에서 들꽃을 벗 삼아 산책을 즐기고 벌꿀색 가옥들을 살피며 풍경의 아름다움에 동화되었다. 도시의 시계를 멈추고 오래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기쁨을 만끽하며 유명한 구역인 바이버리의 경관을 마주했다. 건물을 세운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던 기운을 흡수하고 창작 활동을 위한 임대 지원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았다. 수로와 어우러진 장소에서 솟아오를 아이디어들을 상상하며 예술가의 고뇌를 헤아렸다.
시골 동네의 품에 안겨 생각의 타래를 차분히 풀어내고 겉치장을 걷어낸 순수함에서 위안을 찾아냈다. 공기를 들이마시며 겹겹이 쌓였던 피로가 씻겨나가고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여행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각을 누리며 시간을 덧입힌 주변으로부터 굳센 태도를 쌓아 올렸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을 누비며 내면에 숨겨진 심지를 발견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얕은 물가를 걷는 찰나의 소중함을 심장에 간직한다. 타인과 삶을 저울질하며 상처를 입을 때면 코츠월드에서 마주한 반짝이는 윤슬을 떠올린다. 조급함을 냇물에 흘려보내며 나만의 보폭을 되찾는다. 시대를 견딘 글귀들을 지표로 삼아 현실의 불안을 잠재운다. 바깥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단단히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