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수백 년의 지성이 숨 쉬다
역동적인 런던을 잠시 벗어나 수백 년의 학문적 깊이를 품은 옥스퍼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로 자전거 나라 투어에서 기획한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일정에 합류하여 한국인 가이드의 인솔을 따랐다. 단일한 대학교 이름으로만 짐작했던 옥스퍼드는 수많은 대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학문의 도시였다.
도시 전체를 거대한 재단으로 묶어 여러 단과대학을 품어내는 독특한 구조에 감탄을 뱉었다. 수재들을 끊임없이 길러내는 지성의 땅을 밟고 서서 잊고 지냈던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조용히 불태웠다. 얇은 지식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자만했던 자아를 거대한 시간이 머무는 도시 앞에서 겸허히 내려놓았다. 도시 전체에 짙게 깔린 잉크 냄새와 오래된 종이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내면의 지적인 갈증을 단숨에 일깨웠다.
유창하고 재미있는 가이드의 설명 덕분에 낡은 돌담을 스칠 때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머릿속에 쏙쏙 새겨 넣었다. 여성을 최초로 수업에 참석시킨 지저스 칼리지의 고풍스러운 외관을 찬찬히 눈동자에 담았다. 과거 귀족들을 향해 오만함을 참회하라는 의미에서 일부러 비좁은 형태로 만들었다는 옥스퍼드 보태닉 가든 칼리지의 참회의 문 앞에서는 옷깃을 단정히 여미고 고개를 숙였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법한 좁다란 문을 지나자마자 캠퍼스 내부에 숨겨두었던 아름다운 공원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웅장한 건축물과 푸른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경이로운 풍경을 두고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어 한참을 머물렀다. 책상 앞에 앉아 수백 번 상상하는 일보다 직접 두 발로 땅을 디디는 찰나의 경험이 더욱 값진 순간이었다.
가장 고대했던 크라이스트처치 대학교 내부로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이곳은 영화 <해리포터> 내 식당의 모티브가 되었던 공간이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영국 왕실과 옥스퍼드 출신 학자들의 근엄한 초상화를 우러러보며 시대를 초월하듯 말문이 막혔다. 관광지로만 짐작했던 식당은 실제로 재학생들을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타 대학교 학생에게만 단체 예약을 통한 식사를 허락하고 일반인에게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을 전해 들었다.
옥스퍼드 탐방과 식사를 모두 예약해 두었다는 일본의 어느 대학 단체 관람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학창 시절의 특권에서 비롯된 기회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나무 식탁 위로 내려앉은 수백 년의 학구열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세월의 결을 실감했다.
크라이스트처치를 빠져나와 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지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쉴 새 없이 눈에 담았다. 여러 학과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넓은 간격으로 흩어져 있어 학생들이 이동 수업을 위해 자전거를 필수로 삼는다는 이야기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오래된 자갈길 위에서 치열하게 수학하는 학생들을 향해 동경의 시선을 보냈다. 성경을 처음 영어로 번역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옥스퍼드 출판사는 원래 대학 건물 한편에 있었다가 규모를 키워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는 일화도 흥미로웠다. 유구한 역사와 지금의 일상을 완벽한 균형으로 엮어내고 있는 학문의 도시 특유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첨탑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렀다.
발걸음을 돌려 옥스퍼드 명물로 손꼽는 탄식의 다리 밑을 걸으며 대학생들의 애환을 담은 얄궂은 속설에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성적표를 확인한 후 다리 밑을 지나며 쏟아내는 한숨과 눈물을 묘사한 귀여운 미신을 들으며 수재들의 도시가 지닌 인간적인 이면을 발견했다.
다리 밑을 지나가다가 중간에 돌아오면 옥스퍼드에 영영 입학할 수 없다는 또 다른 농담을 듣고는 행여나 발걸음을 돌릴까 봐 앞만 보고 직진했다. 위대한 역사는 물론이고 소박한 농담과 땀방울로 켜켜이 쌓아 올린 골목길을 누비며 옥스퍼드를 이해했다.
빈틈없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에서도 씩씩한 미소로 넘기며 도시를 굽이굽이 탐험하는 이방인의 호기심을 한껏 발산했다. 수세기 동안 버텨온 지성의 전당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돌아섰다.
건축물 사이를 누비며 얻어온 반짝이는 깨달음을 가슴에 품고 현재의 불안한 일상을 의연한 태도로 마주한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서 한 숟갈을 차지하는 삶을 정성 어린 손길로 가꾸어 나간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해 초조해질 때면 옥스퍼드의 오래된 자갈길과 경쾌한 자전거 소리를 떠올린다.
시간의 힘을 굳건히 믿으며 선택한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 나간다.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지적 가치들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 팍팍한 현실을 뚫고 나간다. 옥스퍼드의 거리에서 주워 모은 깊은 사유들을 차가운 일상을 데우는 강력한 불씨로 피워낸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풍경들처럼 어떤 시련 앞에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마음을 기어코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