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속 우생학에 대해

by 이곤














'이곤아, 사회는 왜 각자도생일까'


'알잖아요. 그래도 내일 얼굴보고 또 일해야 하는 거'


'원래 드러워. 드러워야 직장이지'


'온갖 인간 모인게 직장인데, 조용하길 바란 건 사치지'


'선생님. 원래 그래요'


'우리 돈벌잖아. 돈 버는 데에 그런 말 듣는 것도 포함이야'



얼마전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요근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오는 주제가 하나 더 추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는 왜 더러운가' 또는 '얼마나 더러운가' 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런 물음으로 함축할 수 있었다. 친구의 직장 상사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또한 그 비슷한 군상의 얼굴을 떠올렸다. 꼭 비슷한 상사가 비슷한 짓을 하고, 비슷한 언행을 했다. 한편으로는 재밌다가도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하긴, 사람이 사람한테 실망하는데 무슨 다른 짓을 하겠는가.


다 거기서 거기지.


제법 비관적인 생각을 하다가 요근래 읽기 시작한 강지영의 에세이가 떠올랐다.




"아 형님 정말 못 쓸 정도라니까요"

휴게실에서 사물함을 정리하는데 옆방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짜증이 가득한 한 남자의 말에 다른 남자는 차분히 설득했다.

"기회를 좀 더 줘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하지만 흥분한 남자는 본인의 생각을 큰소리로 나열하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강지영, 걔 진짜 엉망이라고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에 당장이라도 방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누구라도 마주치면 표정 관리를 못할 것 같아 선뜻 나설 수도 없었다.

'앞에서는 다들 괜찮다, 잘한다 했지만 여지는 말과 모습이 다가 아니구나. 적나라한 평가는 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구나...'

입사 2년차에 발견한 씁쓸하지만 냉혹한 현실이었다.


- 강지영 에세이 '때론 간절함조차 아플때가 있다' 중에서






그렇게 쓸 주둥이면 찍자




적나라한 평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봤던 강지영 아나운서를 떠올렸다. 짧은 쇼츠, 멘트 사이로도 강인함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까지도 상처를 받는 건 바로 '적나라한 평가' 였다. 우리가 상처받는 이유는 필터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있다.


함부로 상, 중, 하 계급이라 붙이지 못하고 그저 '엉망인 애'로 다르게 계급을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처럼 함부로 철 낙인을 찍지 못하니까. 말로, 분위기로 그의 계급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어느 무리에서던, 어느 직종에서던 서로에게 역할이 있는 거니까.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한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영화 '가타카'에서 나오던 대로 우성, 열성 유전자에 따라 사람들의 계급이 나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어느 쪽일까? 우생학과 유전 공학에 학창시절 흥미를 느꼈던 때가 있다. 그 당시에도 공상에 빠져 있던 어린 나는 '딱히 다를 게 없다'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적나라한 평가와 딱지가 붙을 뿐이었다. 우리는 '가타카'속 인물들과 같다. 영화에서 태어난 갓난아이에게 기계가 '범죄자가 될 운명' 이라고 하는 대신, 현실에서 가난하고 학창시절 문제를 일으켰던 이들에게 사람들은 그런 운명이라 한다. (실제로 내 동창중에서도 그런 말을 교사에게 들은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진짜 교도소에 갔다)


어쩌면 영화보다 더 잔인할지도 몰라. 사람이 사람에게 매기는 거니까. 기계가 '일 못하는 운명'이라 하는 거나, 사람이 '내가 너처럼 일머리 없는 애는 처음봤다. 다른 데가서도 이래?' 하는 거나.


이런 잔인한 말들이 비슷한 상사의 비슷한 말과 행동이 된 것 같다. 상사는 아래 직원들의 계급을 매기는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당장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도 그러는 걸. 내 프셉입에서 '넌 도대체 뭐가 문제야?' 라고 나오면 나부터 멘탈이 탈탈 털린다.


그에게 신규는 '문제가 많은 애', '문제가 있지만 괜찮아 질 애', '문제가 적은 애'로 나뉘는 것 같았다. 문제가 뭐냐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그러다 한번은 그의 말을 듣고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내 문제를 알면 해결이라도 할텐데, 모르니까 당신에게 배우는 거 아닐까요. 라고 입까지 갔다가 참았다. 다른 신규들에 대해서도 '쟤는 문제가 너무 많아', '쟤는 진짜 문제가 뭘까' 하며 뒤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봤으니까.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도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들이 평가에 목을 매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 있는 것 같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뒤에는 결국 '상처받기 싫다'는 어린 마음이 숨어 있었다.


지드래곤의 '굿데이' 채널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안성재도, 지디도 같이 이야기 했던 말이 있다. '계속 증명해낼 수 밖에 없어요' 상처받지 않기 위한 삶은 한편으로 고달픈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는 지드래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위 강지영 에세이에서 가져온 한 파트에 붙었던 제목이다.


'타인의 위로에 기대지 말 것'


나를 상처줬던 이의 위로, 평가가 구원이 되지 않길 바라며.

















낭만있던 가타카의 한 장면.


오랜만에 다시 봐야지~~








이전 25화직장인이 되고의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