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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Feb 18. 2024

생일에 찐 진심인 나라

생일축하도 규칙이 있어?

개인의 개성과 생각,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게 아주 중요한 이 나라 네덜란드. 그만큼 한 인간이 태어난 생일을 축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일에 대한 자세만큼은 종교적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2월에는 제 네덜란드 가족 생일 엄청 많습니다. 가족 중에 무려 7명이나 2월에 생일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생일파티가 있어서 2월에는 다른 계획도 못 잡지요. 그만큼 이제는 익숙해질 듯하다가도 낯선 네덜란드 생일문화에 대해 적어봅니다.

생일축하하는 게 그냥 축하한다고 하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 가족, 가까운 친구의 생일을 달력에 적어 생일축하를 꼭 챙긴다

제 이웃은 화장실 달력에 생일을 적어 기억하고 축하를 해준다고 하는데요. 저희는 핸드폰 달력을 씁니다. 생일이면 특별히 만나지 않더라도 꼭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축하를 해줍니다. 하물며 부모님, 시누이, 친한 친구 결혼기념일도 핸드폰에 저장이 되어있어요. 화장실 달력에 생일을 적어두면 항상 바라보게 되니 기억하기 좋나 봐요. 생일은 그만큼 꼭 기억하고 축하해주어야합니다.

좁은 화장실 벽에 맞춰 기다란 모양의 생일 달력. 출처:Dutchnews.nl

- 생일은 미리 축하하지 않는다. 나중에 축하하는 것은 된다

우리나라는 생일에 딱 맞추어 축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 데요. 가끔 그전 주에 모여 축하파티를 하기도 하고요. 만약 생일날 보지 못한다면 생일카드랑 선물을 미리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그리고 독일도 그렇다네요) 미리 축하하는 것이 부정 탄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간은 생일 축하를 미리 하면 생일까지 못 산다는 미신 때문이라네요!


- 생일 파티는 스스로 준비한다. 케이크도 포함

생일 축하에 진심이다 보니 그럼 서로 생일파티를 열어줄까 싶지만, 짠돌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ㅎㅎ 생일파티는 주최자가 마련하고요. 장식, 케이크와 마실 것, 요깃거리를 준비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드는 외식보다는 집에서 생일축하를 많이 합니다.


- 생일 선물은 무엇을 받고 싶은지 리스트를 적어 보낸다. 보통 30유로 이하의 작은 아이템을 적어보내야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 간에 가족 간 계좌로 선물용 용돈을 쏘는 일은 전무후무 아닐까요? 보통 생일 초대를 할 때 함께 받고 싶은 물건을 적어 보냅니다. 책이나 주방용품 같이 소소한 선물이 보통 리스트를 채웁니다. 이 리스트가 없으면 모두들 '선물을 뭐 받고 싶어'하며 물어오죠.  

사실 이런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일입니다. 도대체 나한테 필요한 것이 뭐지, 30유로 이하의 물건 중에 뭐가 좋을까, 생각하는 게 썩 내키지도 않고요. 그리고 전 선물을 열어봤을 때의 서프라이즈가 없는 게 서운하더라고요. 하지만 네덜란드스럽습니다. 필요한 것을 알려준다면, 돈을 허투루 하지 않으며, 기대치에 맞는 것을 줄 수 있으니까요. 돈은 돈 대로 쓰고, 기뻐하지 않을 선물을 준다면 그만큼 낭비도 없다,라는 생각이죠.


- 생일파티를 하지 않으면 생일선물은 기대하지 않는다

주고받는 것에 아주 정확한 네덜란드이니 생일파티를 열지 않으면 선물도 없습니다.


- 선물과 카드를 받으면 카드를 먼저 읽어보고 바로 선물을 열어본다

케이크의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고 소원을 생각하며 불을 후~ 하고 불어 끄는 귀여운 관습은 이곳에도 있는데요. 케이크를 한 조각씩 먹고 나면 이제 선물을 열어볼 차례입니다. 한 사람씩 자기가 마련한 선물과 카드를 생일 당사자에게 주지요. 그러면 받는 즉시 카드 먼저, 그리고 선물의 포장을 열어봅니다. 바로 열어봐야 무례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카드를 읽고 행복한 반응을 하고, 선물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기가 이미 받고 싶다고 한 물건이 안에 있다고 해도 행복하고 기분 좋게~ 반응합니다. 정말 카드나 선물이 마음에 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거나 양볼에 인사 뽀뽀뽀를 합니다. 마치 하나의 쇼~ 같아요!

(인사 뽀뽀뽀 - 네덜란드식 에티켓 참고글 https://brunch.co.kr/@thenetherlands/73)


- 파티 당일 당사자뿐만 아니라 초대받은 가족들, 가까운 친구에게도 축하를 건넨다

아니면 파티에 온 모두에게 축하를 건넵니다. 축하한다는 네덜란드어는 'Gefeliciteerd 흐펠리시티어드 (영어로 번역하면 congratulations, 축하합니다)'입니다. 이 말이 마치 "안녕하세요"가 된 듯, 파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축하해요"하고 인사합니다. 생일 당사자가 누구인지 몰라서도 아니고요 (그럴 일은 없겠죠!). 당사자가 옆에 있든 없든 축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왜일까요? 생일을 맞은 당사자와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바라보는 데서 나온 풍습은 아닐까 합니다. 첫 돌을 맞이한 아기의 생일날, 부모로 고생했다고 전해 듣는 이야기처럼요. 돌을 맞이하는 아기의 부모도 축하받을 일이죠. 아이가 서른 살, 예순 살이 되어도, 부모는 축하받을만합니다. 그러자니 그의 형제, 자매, 친인척, 친구도 다 같이 축하받을 만하다는 게 이해가 좀 더 갑니다.


- 생일 축하 노래가 다양하다

우리도 부르는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누구의 생일축하합니다~' 노래 외에도 장수, 즉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노래가 릴레이로 연달아 불립니다. 그리고 대미는 우리나라고 치면 '만세!'인 "HOERA!" (영어의 Hurray입니다)라고 팔을 들며 외치는데요. 그러고 나면 케이크의 촛불을 후~ 불어 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네덜란드에서 크리스마스보다 갖은 의식이 더 많은 게 생일이었네요.


-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조금 후에 와인과  함께 치즈 같은 짭짤한 간식을 먹는다

우리나라의 생일케이크는 보통 과일이 많이 들어간 생크림케이크죠. 여기서는 타르트나 파이도 많이 케이크로 먹습니다. 생크림을 곁들이는 애플파이는 국민 파이인데요 (네덜란드에서도 사과가 잘 자랍니다). 생일파티에 초대할 때는 보통 커피와 케이크를 준비합니다. 다른 것 (김밥, 과자, 과일) 다 ~ 필요 없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낭비를 또 꺼려요. 역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죠. 만약 파티가 좀 길어진다면 한 시간쯤 후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합니다. 수프, 비터볼른, 비스킷과 치즈가 나오고 같이 먹을 와인도 내오고요. 한꺼번에 다 내지 않고 케이크와 그 외 요깃거리를 따로따로 준비합니다.

애플파이 모양의 생일카드 (출처: studio retro)

- 회사에 간다면, 자기 생일날 직접 케이크를 가져간다.

제가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직장선배님들이 막내 챙겨준다고 케이크 사주시고 하던 정은 없습니다. 자기가 직접 케이크를 가져가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가 아니라, 커피가 궁금해지는 10시쯤이나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 2시쯤, 공용 공간에 케이크와 그릇, 포크를 세팅해 두고,  동료들에게 '나 생일이여~ 케이크 가져왔으니 맛있게 먹어~'라고 이메일을 돌립니다. 그러면 동료들이 차례차례 와서 생일 축하한다고 악수를 하거나 뺨에 인사 뽀뽀뽀를 하고, 케이크를 가져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먹고 싶을 때 케이크를 먹으며 일합니다........

이렇게 케이크를 직접 가져가는 문화가 이상했지만, 이제는 뭐가 한국 혹은 뭐가 네덜란드 관습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자기 생일날 한 턱 쏘는 건 또 우리 문화잖아요. 그리고 직접 케이크를 가져가면 케이크를 못 받아 서운 할 일도 없는 장점이 있지요.


- 나이가 50이 되면 남자는 '아브라함', 여자는 '사라'가 된다. 

술까지 들고 있어 코믹하게 표현한 아브라함과 사라 (출처: xpat.nl)

종종 거리를 걷다가 괴물(?) 같은 남자 혹은 여자의 거인 풍선이 집 앞에 보이면 '아, 이 집에 50이 된 사람이 있구나' 하면 됩니다. 남자 풍선의 이름은 '아브라함', 여자 풍선의 이름은 '사라'이고, 50이 된 당사자들도 아브라함과 사라라고 불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두 인물이 아주 오래 살았기 때문에 유래된 풍습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칠순이 큰 잔치 때라면, 이곳은 50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 레스토랑에 생일이라고 말해두면 식사 후에 불꽃과 초콜릿을 (공짜로) 가져다준다

짠돌이 나라지만 생일만큼은 특별한건지 레스토랑에서 무료로 무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생일 풍습입니다. ㅎㅎ 미리 레스토랑에 말해두면, 식사가 다 끝나고 디저트 코스로 넘어갈 때 쯤 초콜릿으로 "누구누구 축하합니다!" 라고 적은 그릇과, 타닥타닥 타는 작은 폭죽스틱을 꽂아 가져옵니다. 그 멋지고 요란한 광경에 식당에 있는 모두들 고개를 돌려 생일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바라보죠. 생일 뿐 아니라 결혼기념일 같은 날에도 미리 레스토랑에 얘기를 해두면 멋지게 짜쟌하고 가져오니, 누구의 서프라이즈로 준비하기 좋아요. 사실 이렇게 초콜릿 문구를 받으면 커피 한 잔이라도 더 마시게 됩니다.

초콜릿 다 먹어줍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파티에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두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고들 많이 하는데요. 사람이 많이 올 수록 그 원이 점점 더 커진다고들 합니다. 제가 간 생일파티는 좀 더 자유롭게 서거나 앉을 수 있어 제가 경험하지 못한 풍습은 빼봅니다.)


이런 복잡한 생일규칙 때문은 아니지만, 제 생일에는 해외로 여행을 갑니다~ ㅎㅎ 가족에 어린아이들이 늘어나다 보니 아이들 생일 따라다니는 것도 바쁘더라고요. 이제 학교에 가면 아이의 친구들 생일 덕에 더 바빠지겠죠.


한 사람이 태어난 아주 특별한 날이 생일이죠. 풍습이야 어떻게 되었든 모두가 생일날 자신의 방법대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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