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앨 Jun 23. 2021

남향의 브라반트 여행기 2

네덜란드 여행

산이 없는 네덜란드여도, 자연은 항상 아름다워. 나무가 무성한 숲길이나 농장따라 난 작은 길들 아니면 그냥 훤히 뚫린 평야나 목장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지. 그리고 어디를 가든 있는 물길이나 운하는 어떤 날씨에도 네덜란드 경치에 멋을 더하구. 이런 걸 목가적 아름다움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의 들판은 가을이면 황금빛이 되는데. 네덜란드는 사시사철 잔디가 항상 푸르더라. 겨울철 우중충한 날씨에 비가 3주간 와도 공원의 잔디는 초록이라는 게 얼마나 위안인지 모른다. 마치 이끼처럼 항상 습해야 잔디가 초록색인가 봐.

둘 째 날 우리는 Holy Oak 이라는 채플에 갔었어. 구경도 하고 채플이 있는 푸른 숲길을 따라 걸을 생각이었지. 아마 교회에 가는 사람은 적어져도 종교는 브라반트의 문화의 아주 큰 부분일 것 같다. 전설만 해도 다양하더라고.


그래서 Holy Oak의 전설에 따르면, 1406년에 어떤 사람이 물에 떠가는 마리아 상을 발견해서 근처 참나무에 올려두었대. 동네 사람들이 그 날 밤 마리아상을 옮겼는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 가보니 그 마리아 상이 다시 그 참나무에 올라가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 마리아 상의 신성함을 기념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채플을 지은 게 여러 번에 걸쳐 지금의 하얗고 단정한 모습의 채플이 되었다네. (출처). 그저 앉아 마리아 상을 바라보던 노부부도 있었고, 산책나온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로 북적이기도 하고, 우리처럼 관광 온 사람들도 오는, 문이 항상 열려있는 아담한 채플이야.  

또 재밌는 전설은, Sweet Moeder (다정한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 상에 대한 거야. 이번에는 무려 1380년에 땔감으로 쓰여질 뻔한 마리아 상에 대한 이야기야. 그 마리아상이 결국 교회에 모셔졌을 때, 그 용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대. 어떤 여자가 "못 생겼다"고 얘기한 날 밤, 마리아가 그 여자의 꿈에 나타나 "왜 나를 못 생겼다 하는가. 나는 깨끗한 천국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영생을 얻은 존재다. 나를 찾아와 너의 고통을 극복하고 영생을 구원하라"라고 했대. 그 자신감 (?)과 권위가 인상 깊어서 번역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마리아 상이 다리를 저는 사람도 걷게하는 등 여러가지 기적을 (무려 500개 이상의) 일으켜, 네덜란드와 그 외의 많은 지역에서 이 마리아 상을 보러 아직도 온다는 군. (출처)  

브라반트를 차로 여행하면 보겠지만, 길을 따라 곳 곳에 작은 채플들이 있어. 몇 개를 지나치다가, 벽돌로 지은 아담한 사이즈의 채플이 어쩐지 방문해야할 것 같아 차를 돌려 한 곳에 들어가봤지.


놀랍게도 그 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에서 희생한 미국과 영국 장병들을 위한 곳이었어. 1944년 9월 18일에 만들어진 이름판에 새겨진 이국의 사람들. 빛 바랜 사진 속의 얼굴들이 안타깝고도 존경스럽게 느껴지던데.

네덜란드도 나치 독일에 점령되면서 식민기의 아픔을 겪었지.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고 싸웠고, 특히 브라반트 지역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어. 그래서 곳 곳에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물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내 조국이 아닌 나라의 평화를 위해, 싸우고 전사하는 사람들. 슬프면서도, 이를 희생으로 추모하기 먼저, 전쟁의 아픔과 악을 깨닫고 침략과 전쟁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봤어. 우연히 들어간 채플에서 생각도 못한 아픈 역사를 느껴보고 가게 되었네.


브라반트 지역에는 성 (castle)이 많더라. 우리가 저녁 때 산책코스로 간 헤스바익 캐슬 (Heewsijk Castle)은 우연의 일치인지 2차 세계 대전과 관련있는 곳이었어. 독일군을 몰아내려 한 미군 공군부대가 도착한 곳이 었대.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풀과 숲 뿐인 네덜란드의 중세시대 성에 도착해서 작전을 계획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가 느낀 햇볕과 평화로움을 그 사람들도 가끔씩은 깨달았기를 바래보았어.


대포 모양을 본 딴 철문틀과, 장병들을 기리는 기념비의 흰 튤립이 평화로운 성을 조금은 애틋하게 만들더라.

"Those who gave their lives for freedom will always be remembered" 자유를 위해 희생한 이는 영원히 기억된다. - 기억하자구.


헤스바익 성이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그런지, 네덜란드 전역에 60-80마리 밖에 없다는 흑조도 보게 되었어. 참 신기하다. 백조는 하얘서 백조일텐데. 저 버드나무 아래로 사라지더니, 그 날 저녁에는 더 이상 볼 수 가 없었어.


성이 참 아름답지? 무려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성이래 (출처). 두 가지의 다른 양식의 건축물이 함께 있는데, 그 모습이 주변 나라의 건물하고는 확연히 다른 네덜란드만의 느낌을 준다.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이 닫혔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니 시간을 맞춰 한 번 들어가봐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내친 김에 들러본 근처에서 가장 가까웠던 성은 아주 달랐어. 지금은 레스토랑/호텔로 쓰이고 바로 옆에 운동장과 문화센터가 위치한, 아주 주민들의 생활에 가까워진 성 헨켄샤흐 캐슬 (Castle Henkenshage)야. 결혼식도 할 수 있다네. 아마도 14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중세 느낌이 나게 지은 그 당시 많은 성 들의 하나였다고 해. 네덜란드에서 자주 보이는 빨간색 창문 문양이 리본처럼 예쁘더라.


동화 속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희생한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기도 하고, 채플에 걸어가 누가 밝혀둔 촛불을 보면 엄숙해지기도 하고, 푸른 숲을 걷다보면 그냥 다 힐링이 되는, 여러모로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일정이었어.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남향의 브라반트 여행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