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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Aug 29. 2021

외로움을 깨달은 외로운 순간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그와 그녀는 2004년 11월에 처음 만나 2005년 새해 되는 날. 새해의 첫 시작 키스와 함께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1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볼 때마다 서로의 눈에서 꿀이 어찌나 떨어지는지 내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심지어 미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포착하면, 그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용히 방으로 들어온다. 특히 그날 저녁은 목이 말라 아무 생각 없이 부엌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길이었고 지나가며 우연히 본 세면대 앞의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영화 한 장면 같았다. 불도 안 켠 화장실에 화장실 작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빛으로만 보인 실루엣으로만 보인 방상과 세실의 모습. 세실의 임신한 배를 만지며 방상이 뱃속의 아가와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 그 자체였다.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스쳐 지나간 장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내 잊지 못할 내 인생 영화의 엔딩 장면이 되었다. 심지어 그것은 연출된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의 영화. 이 날 이후 난 새로운 감정이 돋아났다. 바로 '외로움'이라는 녀석이다. 살면서 나조차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옆에 연인이 있어도, 없어도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며 살아왔고, 어쩌면 삶에서 연인이 아닌 사랑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외로움과 감정은 내게 크게 와닿지 않았었나 보다. 이런 메마른 나의 감정에 방상과 세실의 사랑이 흘러넘치고 넘쳐 결국 내게까지 닿게 되었고 내 삶으 새로운 감정이 시작되었던 날이었다. 사랑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제야 사랑에 눈을 뜨게 된,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이런 나를 모르는 사랑꾼 방상과 세실 부부는 주말이니 계곡에서 수영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즐기는 삶을 살면 외로움을 잊혀지기 마련이라며 스스로에게 위로아닌 위로를 해주며 수영할 즐거움을 애써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방상과 세실을 기다리는 시간이 흘러 저녁 8시가 훌쩍 넘게 되자 아마 임신한 세실이 피곤해서 오늘 못 가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9시쯤 되었을까? 방상이 불렀다.

'준비 다되었어? 수영 가자'
'응?'
'수영하러 가자고 했잖아'
'지금? 밤 9시인데?'
'그러니까! 얼른 나와'

저녁 9시에 계곡으로 수영을 가자고? 일단 수영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밝다. 저녁 수영이라니 한껏 신난 와중에 세실이 소개해준 프랑스 가수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잊고 싶지 않은 기대로 가득한 순간들.  



6월 남프랑스의 저녁 9시  


10분 남짓 운전해서 도착한 작고 예쁜 마을 ANDUZE (앙뒤즈)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집에서 챙겨 온 접시에 음식을 나눠 먹는다. 일회용을 잘 쓰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커다란 접시를 밖에서 꺼내는 일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며 또 새로움을 느낀다. 



'밤 9시'라는 단어보다 오히려 '이른 저녁 9시'가 더 어울리는 무렵에 다른 가족들도 저녁 수영을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역시나 계곡 물은 쉽지 않다. 정신이 번쩍 드는 시린 계곡물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임신한 세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옆에 방상이 있으니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 생각하며 기분 좋게 물속에 잠겨본다.  얼핏 얼핏 그들을 보면 온 우주와, 온 세상에 둘만 있는 듯 사랑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수영하는 그들을 보며 유유자적 오리들과 수영을 하며 계속 되뇌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 '
'나는 외롭지 않'
'나는 외롭지'
'나는 외롭'

외롭지 않은(?) 나의 마음을 달래며 여름밤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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