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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Sep 05. 2021

낮잠의 중요성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맨날 책상 앞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키보드만 두들기던 내가 알록달록 계절마다 손에 칠하던 매니큐어 대신, 자연 흙 네일로 손에 수분을 공급하고, 가끔 여자이고 싶을 때 뿌리던 향수 대신, 손에서는 양파 냄새로 '나 양파 뽑는 여자예요'라고 강하게 유혹할 수 있으며,  비바람에 허리 굽은 피망 허리 펴주다가 내 허리를 굽혀가며, 시골 여자가 되어가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왜 파리에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남프랑스에 내려와 노년을 보내는지 이해가 된다. 날씨가 매일 매일 정말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냥 쏟아지는 태양에 서 있기만 해도 비타민이 들어와 자라는 채소처럼 내 안의 행복감도 쑥쑥 자라는 기분이다.  한가득 토마토를 땄다. 내 키보다 훨씬 넘게 자란 토마토 줄기 사이에서 탐스러운 붉은빛의 토마토를 찾아내면 그 희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키운 토마토라고 할 수 없지만, 수확의 기쁨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내가 키운 마냥 탐스럽게 열린 토마토를 보고 한 바구니를 채우면 땀 흘린 보람이 그 바구니에 함께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토마토를 뿌듯하게 다 딴 후 방상의 아버지 집에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귀여운 미소의 방상 아버지가 초대해주신 도시 알레스의 아버지집은 시골의 구석에 있는 정리가 안되어있는 집에서 지내왔던 내게 프랑스의정리된 아파트를 보니 프랑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듯했다. 직접 요리한 요리를 그릇에 예쁘게 담아주시며 가족 자리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방상 아버지는 내가 신기하신지 이런저런 질문을 참 많이 하셨는데 질문에만 대답할 뿐, 그들의 대화에 참여했다고는 볼 수 없다. 대답하는 앵무새마냥 단답형으로 대답을 할정도였던 나는 한국에서 말로 먹고살던 내가 여기서 나의 말솜씨를 못 뽐내다 보니 그동안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여러 다른 답답한 감정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된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않는 터라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듣듯 흘려보내는 불어 들 사이 속에 나는 음식에 집중하기로 한다. 심지어 디저트까지 완벽한 마무리. 아이스커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이 잔뜩 올려진 프라페까지. 완벽한 점심이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사실 나만의 설레는 계획이 하나 있었다. 점심 먹고 꼭 낮잠을 자는 방상이기에, 오랜만에 가족 집에 간 그가 본가에서 낮잠을 자면 잠깐 나가 엽서를 사겠다며 계획에 흐뭇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낮잠을 집에 가서 자겠다고 했고, 왠지 지금 엽서를 못 사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10분만 시간을 주면 엽서만 사서 얼른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알겠다고 했고, 지나오면서 봐 두었던 엽서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분명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던 거 같은데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고, 마침내 찾은 엽서 가게에서 엽서를 고를 틈도 없이 빠르게 몇 장 집어 들고 차로 급히 돌아왔다. 나름대로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30분이나 지나있었고 차에 탄 내게 그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너무 빨리 말해 다 알아 들을수 없었으나 대략 내용은 이러하였다.

 

'나 지금 너무 피곤한데, 너 때문에 난 낮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어'

'미안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선글라스가 너무 진해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어서 마음의 상처를 덜 받았지만, 미안하면서도 그깟 낮잠 때문에 내게 이렇게 화를 내다니. 항상 친절했던 그였기에 충격도 그만큼 컸다. 돌아오는 내내 무거운 침묵이 가득했다. 그날 오후 유럽인들이, 특히 남유럽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낮잠에 대해 찾아보게되었다. 스페인에 나라 전체에 아예 씨에스타 시간이 있는 것처럼 스페인에 딱 붙어있는 남프랑스도 뜨거운 뙤약볕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작 20~30분일지라도 그들의 낮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던 나 자신에 반성하며 미안한 마음에 한식 저녁을 대접했고, 방상도 미안했는지 이번 주말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제안했고, 세실과 방상과 함께 마을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화해의 주말을 보냈다. 그렇게 항상 좋을수만은 없지만 서로를, 사람을, 나라를 이해해가며 나의 행복 여행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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