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가 아니라 왜? 진이가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의 필수 질문인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에 대비해 고민한 적은 있었다. 사진자료를 곁들여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까. 아니야. 아직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나이니 조상의 지혜가 담긴 두루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이 좋을까. 아무튼 이제껏 아이가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무나 철학적인 질문에 당황한 나는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끌어들였다.
“음... 엄마, 아빠가 진이를 너무 사랑하지? 초코할머니랑 수박할머니, 할아버지도 너를 너무 사랑하지? 미야이모도 너를 사랑하고, 초코랑 친구들, 선생님, 이모, 삼촌 거기다...”
“아니 그건 알아~”
“그렇게 진이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네가 있는 거지.”
“그것도 다 알거든.”
진이는 항상 내 대답을 들으면 그건 이미 안다고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 말고 다른 답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 그러는 것인지 속을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이제 진이가 왜 있는 줄 알아?”
“귀여워서?”
“푸하하하. 맞아. 귀여워서.”
“아니야. 귀여워서는 아닌 것 같은데~ 엄마랑 아빠가 결혼해서?”
“그것도 맞지.”
그 사이 스스로 답을 찾아낸 진이가 기특했다. 한편으론 엄마와의 결혼이 꿈인 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결혼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혼자서 고민했을 시간에 마음이 뭉클했다.
결혼 전, 꿈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고. 또래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진이를 낳았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꿈을 이뤘다며 축하해줬다. 헌신적인 성격도 아니고(동생은 나보고 “진짜 지밖에 모른다”고 한다.) 아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내가 어쩌다 현모양처의 꿈을 가지게 됐을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딱히 다른 꿈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조금은 허무해질 뻔한 나에게 진이는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한 명의 멋진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아직도 아기처럼 품에 꼭 안겨서 진이는 물어본다. 내가 ‘우주만큼’이라고 하면, 자기는 ‘우주 밖에 있는 행성들 다 합친 만큼’이라고 욕심을 낸다. 매일 물어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대답이 시원찮은가 보다. 그럼 이제 알려줄게. 엄마의 대답은.
진아,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건
네가 웃을 때 같이 웃음이 나는 거야.
또, 네가 잠들 때까지 너의 등을 긁어주는 거야.
또, 햇빛 쨍쨍한 날 네 옆에서 그늘이 되어 함께 걸어가는 거야.
또, 네가 ‘무서워’할 때 꼭 안아주는 거야.
또, 자고 있는 너를 한참 바라보면 눈물이 고여 네 볼에 살짝 뽀뽀하는 거야.
또, 한 달 두 달 전의 네 모습을 돌아보며 계속 커가는 걸 아쉬워하는 마음이야.
또, 네 손을 잡았을 때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감촉을 좋아하는 거야.
또, 네 눈동자 속을 한동안 바라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