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넘어 처음 ‘생각’이라는 걸 하다.
지금까지 참 생각 없이 그냥 흘러왔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순둥이’라고 불렀다.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떼 부리지 않고, 무얼 사달라고 잘 조르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성적은 탁월하지 않았고 중상위를 겨우 유지하는 정도였다. 하고 싶은 게 없진 않았지만, 특별히 주장하지 않았다. 그냥 담임선생님이 추천하는 학교 학과에 진학했고, 무난하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의 남편과 만났다.
결혼했어도 독립은 아니었다.
남편은 아마도 조용한 내 모습에서 ‘순종과 헌신’의 아이콘을 읽었었나 보다. 아이를 낳기 전 10년 정도는 그게 가능했다. 생활에 여유가 있었으니까.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러나, 아이를 낳고부터 남편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500년 유교 사회의 DNA, 조선 시대의 DNA가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는 집안의 가장이고, 나는 가장에 딸린 한 명의 식솔일 뿐이었다. 집안 대소사 모든 결정은 나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가장인 본인이 혼자 결정했다. 심지어 식사 테이블이나 냉장고, 음식 접시 같은 주방 살림의 위치도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마음대로 바꿔놓기 일쑤였다.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직급으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힘들지만, 심지어 요즘엔 내가 더 바쁜 부서에 있지만, 집에 오면 식사 준비며 설거지, 아이 육아, 집안 대소사 챙기는 일 등 모두 다 여자인 나의 몫이었다. 아이가 없을 땐, 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점차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의문이 생겼다.
“왜, 나 혼자 일과 가사노동, 아이 양육까지 다 해야 하며, 모든 결정은 남편이 알아서 다 내리는가?”
“나는 도대체 뭔가? 이 집의 하녀? 돈 벌어다 주는 가정부?”
우리 엄마도 혼자 계셔서 딸인 내가 돌봐드려야 할 부분이 많은데, 남편은 “너희 엄마는 너희 집 큰아들이 챙겨야 해” 이렇게 말한다.
내 맘속에서 불공평하다는 생각.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솟구친다. 집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쉬는 곳이 아니라, 시어른들을 모시고, 아이를 키우는 곳이라 한다. 나에게는 제2의 직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것 같다.
'이건 아니야!'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하지 않는 배우자! 내게 역할과 의무만을 강요하는 사람!
내가 집에서 책을 읽는 그것조차 이기적이라고 비웃는 남자!
항상 아이와 집안일을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엄마가 아닌 집!
더는 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아닌 곳!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집이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감옥이니까 탈출해야 한다!
다르게 살아야겠다! 나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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