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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Mar 02. 2023

'수평어'는 과연 가능할까?

출처 : 대한민국 외교부 서포터스 공식 블로그 'MOFA랑'


외교부 블로그에서 Z세대에게 세상 핫한, 수평어? 예쁜 반말? (feat. 클럽하우스의 핫한 문화)라는 포스팅을 보았습니다. Z세대, 핵인싸, 윙크하는 애플 미모지(Memoji), 그리고 클럽하우스까지. 요즘 소위 힙하고 쿨한 것들을 모조리 등판시켜 소개했다는 것은 '수평어'라는 개념이 그만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때문일겁니다. 이 포스팅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우리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을 해봐요'가 아닐까요? 말이라는 것은 결국 사용되어야 하고 서로 교환되는 언어로써 소통되어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제안을 서슴없이 했다가 반발이 생길수도 있으니 '반말'이 아니라 '수평어'로 용어를 순화하고 이러한 제안이 갑작스러울 수 있으니 'Z세대는 수평어를 쓰더라'라는 다소 밋밋한 세대탐구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외교부에서 발행하는 공식블로그인데 대중이 당황해할만한 제안을 하는것도 무리가 있으니 이해할만 합니다.




말 놓는 예능콘텐츠


축구선수 이천수의 유튜브채널을 보면 명보야 밥먹자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예전에 김남일이 인기있었을 때 김남일이 대선배 홍명보에게 했던말로 유명했었는데, 어느새 이천수가 했던말로 바뀌어서 누가 진짜로 그렇게 말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천수가 이 유행어를 잘 살린게 이 채널인데요. 이천수가 초대된 지인(주로 축구선수)과 반말로 이런저런 비하인드 썰을 푸는 내용입니다. 선수시절에 버릇(?)이 없었던 이천수의 캐릭터와 잘 결합되어 좋은 콘텐츠가 되었는데요. 나이차이와 선후배관계에 상관없이 동갑내기 친구처럼 이야기를 하기때문에 특유의 뒷담화가 더 찰지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반말은 의도된 장치입니다. 시청자들이 초대손님과 이천수의 관계를 까맣게 잊고 이야기 내용에만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죠. 이게 핵심입니다. 중요한건 겉으로 보여지는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 내용에 있다는 것을 이천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튜브 리춘수, 명보야 밥먹자


그리고 JTBC 예능 아는형님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학교교실을 배경으로 동급생(초대손님)이 전학와서 자기소개를 하는 컨셉으로 이 역시 서로 반말을 합니다. 동갑 친구라는 설정이니까 당연하지요. 여기서도 나이와 선후배 관계는 없습니다. 다들 교복을 입고있으니까 아무리 어린 아이돌 초대손님이 와도 모두 편하게 친구처럼 반말을 해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시청자들은 10대 연예인이 50대인 강호동에게 반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재밌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말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설정이기도 하지만 이천수의 유튜브처럼 연예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에 집중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JTBC 예능, 아는형님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도는 최근 10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몇십년전과 비교했을 때 경직되고 엄숙했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탓도 있을테고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도 있을겁니다. 확실히 수평어를 원하는 조짐은 이런저런 사회적 분위기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수평어는 곧 반말이라고 못박아버리면 '우리 사이에 반말은 좀 그래'라는 심리적인 벽에 부딫히게되고 언제나 그자리에 머물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수평어가 필요한 곳


저는 존댓말과 반말 사이 어디쯤에 수평어가 활약해서 어느정도 완충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수비와 공격 사이가 넓어서 생긴 빈 공간에 미드필더가 뛰어준다면 패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게 되는것이죠. 인간세계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변수가 많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언어스타일이 하나 늘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굉장히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규칙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반말과 형태는 거의 같지만 몇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2인칭을 부르는 주어나 목적어입니다. 반말은 '너'라고 하지만 수평어를 생각한다면 '너' 대신 다른 용어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수평어는 그렇게 어려운 미션은 아닙니다)


아래는 이런 글을 작성하고 있는 와중에 지인이 출연한다고 해서 우연히 민음사 유튜브를 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 직원들의 다소 평범한 작업모습이 소소하고 현장감있게 그려져있습니다. 그런데 팀원들의 대화를 듣다보니 뭔가 거추장스럽지 않게 깔끔하다고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런 인터뷰가 등장했습니다.


민음사 유튜브, 하루종일 회의실에 갇혀서(?) 잡지 마감하는 현장



이 사례에서 등장하는 출판팀은 수평어를 도입해서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멤버가 10명 이하의 작은 규모로

2. 서로 신뢰가 있는 나름 친밀한 관계이고

3. 나이차이가 15살 이내로 크지 않으며

4.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여 분주히 노력하는 모임


이러한 조건이라면 어디서나 어떤 누구라도 시범적으로 도전해볼 수 있는게 수평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은 조기축구 모임에서 수평어 실험을 해볼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들의 상하관계는 생각보다 강해서 의외로 어려울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평어에 대한 저의 생각은 앞으로도 가끔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위 민음사 사례처럼 수평어를 잘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하고 서로 사전에 약속해야 하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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