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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Feb 26. 2023

어디서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살아가면서 보통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지 않습니다. 보통 '어디서'는 다른 요인에 의해 자연스레 결정되기 때문이죠. 저는 예전에 전철역 플랫폼 벽에 걸려있는 서울/수도권 지도를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길을 찾기위함이라기보다 어디서 살면 좋을지 직장과 교통편을 고려해서 이곳저곳을 살펴보곤 했었습니다. 현재 다니고있는 회사 또는 이직하게될 회사가 위치할만한 지역은 대충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살 곳 또한 그 반경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제 블로그를 봤던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농촌유학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경북 예천에 한달에 2번정도 다녀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편도 2시간반 이상 걸리는 거리라 다소 힘들었기때문에 만약 이사를 간다면 이왕이면 서울의 동남권으로 가서 운전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좋겠다는 나름의 지역기준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유행했고 회사에서 원격근무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게되면서 정말로 이사를 계획했습니다. 처음에는 성남 분당에서 집을 알아보다가 가격대비 주거환경이 좋지않아서 점점 내려가다보니 용인 수지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내가 살고자하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은 의외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인 일과 학업, 인간관계 이외에도 사소하게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역선택은 want에 결정된다기보다는 need에 지배됩니다. 때로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조건들은 무엇일지 궁금할때가 있는데 그럴땐 여행지를 고르는 패턴을 보면 조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거주환경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지를 장기여행에서는 일상생활의 제약조건에서 해방되어 선택해볼 수 있으니까요.



여행지를 선택한다는 것


장기여행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주일 이내의 단기여행은 시간이 소중하기때문에 남는시간따윈 없이 깨어있는 시간은 모두 특별한 이벤트로 가득 채울테니까요. 다소 무료하고 심심해야 내가 그럴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관찰해보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않고 시간이 남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 숨죽이고 지켜보는 것이죠. 그런 경험들이 모이고 축적이 되면 자기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15년 가을에 세계여행을 떠났는데요. 에어비앤비로 한도시 한달살기라는 컨셉이 소개된지 얼마 안됐을 무렵입니다. 저도 그런 책들을 보고 정말 재밌는 프로젝트라고 생각되어 더 늙기전에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관찰해보기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한가하고 여유롭게 보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쉽게도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지 그때의 경험으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성과라면 큰 성과랄까요? ㅎㅎ


저의 일상 루틴은 이랬습니다. 잠을 충분히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기름을 입에 한가득 물고 오묾오물거리는 '오일풀링'이라는 것을 한 다음에 오전에 헬스장에 갔습니다. 웨이트와 수영을 동시에 (한국에도 이런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해먹고 다시 나와서 3,4시간동안 걸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1유로짜리 커피를 마시고 가끔 간식도 먹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는 가지 않고 그저 제 발끝이 향하는 곳으로 가서 그 곳의 일상을 그저 편안하고 담백하게 구경합니다. 그리고 초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골식당에 가서 정말 평범한 현지스타일 저녁을 먹는 식입니다. 제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좀 하다가 자는 그런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중요한 건 걷는 행위였다


그렇게 6개월 가까이 유럽과 남미에서 그렇게 하릴없이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저도 돌아와서 생각해봤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었으니 그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만 허비했으니 세계여행이나 한달살기같은건 별 의미없고 부질없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행 마지막 2개월은 한국으로 돌아와 무슨일을 할지 하루종일 고민만 하느라 스트레스만 왕창 쌓여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이 동네, 내일은 저 동네 계속 걸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건축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고 건축관련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니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런 공간관련 책들을 그 즈음 보게되었고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제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습니다. 2015년에 외국에서 그렇게 걸었던 제가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단지 주변이 관광할만한 낯선 이국땅이 아니라서? 일하느라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야 좀 더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는지, 그래서 내가 want하는 살 곳은 어때야하는지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걷는 행위와, 휴먼스케일, 그리고 도시환경 관점에서 다음에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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