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 아이폰11 Pro
편집 : 파이널컷 프로
음악 : Janis Ian의 At Seventeen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2월 28일 금요일 전체회의에서 3월 첫째주에 일단 자율적인 원격근무를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집에서 사무실까지 버스-전철-전철로 door to door 1시간이 걸리는데 이를 왕복하면 2시간. 게다가 요즘 바이러스 전염이 심각한 상황이고 나의 출퇴근 구간 역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이다 (서울 1인가구의 성지 관악구에서부터 2호선 강남라인 통과 후 힙스터의 성지가 될 예정인 성수동까지) 그래서 난 미련없이 제주행을 결정했는데 사실 진짜 가도 되는지 약간 걱정스럽긴 했다.
일할 때, 나는 집중력 유지를 위해서 (라고 쓰고 산만하다고 읽는다) 2층 공용라운지와 5층 엘레베이터 쪽 휴게실, 그리고 자리에서도 최근 허리디스크때문에 일어섰다 앉았다를 하루에도 몇차례 반복한다. 이렇게 쓰고보니 집중력 '유지'가 아니라 '부족'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같은 빌딩 안에서도 나는 꾸준히 원격근무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다. 다만, 진짜로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멀어져도 되는것인지 그 fact가 불안했던 것이다. 집에서 원격근무 하는 것은 1시간 이내로 당장 달려갈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거리이기 때문에 불안감과 예츨불가능성도 대략 1시간 내외에서 정리되는데, 성수동 사무실과 제주시 월정리 사이에는 500키로가 넘는 물리적거리와 그로인한 심리적 거리가 틀림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고 적긴 했지만, 누가 보면 고민 1도 안한 사람처럼 전체회의가 끝난 후 2시간만에 다음날 바로 내려갈 결정을 내렸고 그렇게 꼭 필요한 짐들만 챙겨 출발했다. 오랜만에 패기롭게 편도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빠르면 6일째인 목요일, 늦으면 9일째인 일요일에 돌아올 생각을 하고서.
그렇게 이번주 월요일부터 내 원거리 원격근무는 제주바다를 보며 시작되었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원격근무에서 가장 중요한 제 1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도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편하고 사람냄새 나는 그런 거주지와 동네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그런 환경을 미리 찾았었다.
이왕 제주까지 와서 지내는 데 바다앞이 아니면 속상할 것 같았다. 바다뷰가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로망일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바다와 가까운 곳의 숙소를 정했고, 걸어서 1분거리 안에 일할 수 있는 카페가 있길 바랬다. 숙소는 미리 인터넷으로 정할 수 있었지만 카페까지 미리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좋은 카페를 만나는 것은 어찌보면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데, 처음부터 기가막힌 카페를, 아니 일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변수가 있기 때문에 숙소를 일단 1박만 예약하고 숙소상태와 주변 상태를 빠르게 보고 그날 숙소주인에게 연박할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이 방법은 붐비지 않는 비수기+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진상이 되고 싶진 않지만 그것도 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내가 3/2 월요일부터 일했던 곳은 식사가 되고 인터넷이 잘되며 주인이 친절하고 손님이 한적하며 일하기에 괜찮은 책상과 콘센트가 바로 뒤에 있고 인테리어가 훌륭하며 BGM이 기가막힌, 집에서 1분거리의 바다뷰의 카페였다. 미리 찾아본 것도 아니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주변부터 살피러 가장 가까운 바다에 가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는데 그런 곳이었다. 4일 연속 이 곳에서 일했고 아침 10시에 문열 때 가서 최대 7시까지 있었다. (그 날은 사장님이 라면을 먹자고 했고, 친구분이 학꽁치를 잡아와 회를 먹자고 했기 때문에..)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한 카페에서 4시간 이상 머무르기엔 제한사항들이 있다. 오히려 나는 궁금하다.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은 4시간 장소1(음료1)을 가고, 점심을 먹고, 장소2(음료2)를 가는 것인가? 여하튼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나의 돌발적인 상황이란, 도착 비행기에서 에어팟 한 쪽을 잃어버린 사건이었다. 작년 런던에서 아이폰7을 소매치기당했던 것처럼 전혀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일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화상회의를 하려면 이어폰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방 처럼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외부 스피커로 화상회의를 할 수 있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외부스피커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격근무 첫 날인 월요일에 있었던 미팅의 멤버 중에선 나만 원격근무자였기 때문에 화면이 굳이 필요없는 상황이라 스피커 전화로 참여했었고, 둘째 날엔 숙소의 다른 투숙객에게 이어폰을 하루 빌려 Google Hangout 앱으로 참여했었다. 하지만 셋째날엔 다시 이어폰을 빌리지 못했는데, 그때부턴 Google Hangout 앱을 전화하듯이 화면을 포기하고 사용했다. 다행히 반드시 화면을 보고 논의해야 하는 이슈가 아니었고 미팅멤버 모두 어느정도 머리속에 그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조금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면 디자이너인 내가 미팅을 일단 끝내고 시안을 만들어 그것을 다시 Slack으로 공유해서 논의를 이어나갔다. (대면 미팅에서도 그러하듯이)
인간은 에너지를 먹고 산다. 춥고 배고프면 다 소용없다. 따뜻하고 배 짱짱한게 최곤데, 일하는 환경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 굶어죽을 일은 없겠지만,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식사'란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식사'를 말한다. 그럴듯한 카페에 오긴 했는데 허기질 때 배를 채울 수 있는 메뉴가 마카롱이나 치즈케잌밖에 없다면 그것은 간식일 뿐 제대로 된 식사가 못되며 그런식으로는 6시간 집중해서 일하긴 힘들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최대한 아침밥을 잘 챙겨먹고 나오고, 훌륭한 점심밥을 먹었다면 그대로 바깥에서 쭉 8시간 집중해서 일할 수 있을테고 마카롱이나 치즈케잌(내가 이것들을 진짜 싫어하나보다)밖에 못먹었다면 5시간정도 일하고 숙소에 일찍 들어와 이른 저녁을 제대로된 방법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을 숙소안에서 보충하는 방법이 있겠다. 두번째 방법은 숙소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오전에 일을 시작한 장소에서 훌륭한 점심과 오래 있을 수 있는 조건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솔직히 화상회의를 해야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크게 다른점을 느끼지 못했다. 화상회의는 남이 하는 것만 봤지, 내가 해본것은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오히려 일반 회의에선 가까이 있고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추가로 물어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느슨해질 때가 있는데, 화상회의에서는 조금 더 간절하고 절박(?)한 면이 있다. 반드시 필요한 말만 하게 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쓸 수 없으며) 집중력이 매우 높은 상태로 회의가 진행됐다.
제주도가 바이러스 청정지대(3/6 현재 확진자 4명)이기도 해서 그런 신경쓰지 않고 업무를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게다가 미세먼지 청정지대이기도 하니까. 5일째인 오늘은 업무환경이 바뀌었는데, 한 군데에서 4시간을, 숙소에서 1시간, 그리고 두 번째 장소에서 나머지 3시간을 일하고 있다. 역시 4일 연속 갔던 그 장소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환경적 변수의 작은 차이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집중력과 작업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다음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번째 원거리 원격근무 일주일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