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은 우리말로 뭐라고 할까?
아르헨티나 대자연을 여행하다가 얘기하던 도중에 초록색인 들판을 얘기하고 싶은데 말이 안나왔다. 어? '들판'을 꾸며주는 형용사로서의 초록색이 없다? 만약 들판이 파랬거나 빨갰거나 노랬으면, 파란 들판, 빨간 들판, 노란 들판 이렇게 말했을텐데 초론 들판이라니. 그런 말이 있던가? 아니 왜 이건 없지? 왜 말이 안될까를 한참을 생각했다.
BLUE - 파란(형용사), 파랑(명사), 파랗다, 파랗네, 파래요(종결어미결합)
RED - 빨간, 빨강, 빨갛다, 빨갛네, 빨개요
YELLOW - 노란, 노랑, 노랗다, 노랗네, 노래요
WHITE - 하얀, 하양, 하얗다, 하얗네, 하얘요
BLACK - 까만, 까망, 까맣다, 까맣네, 까매요
이렇게 다 있는데
GREEN - 초론??(형용사), 초록(명사), 초롷다??, 초롷네??, 초래요??(종결어미결합)
아니 이건 왜 말이 안되는거지? 이제까지 이 초록색을 어떻게 표현하고 살아온거지? 갑자기 파타고니아 초론?들판 한가운데서 멘붕이 왔다. 누가봐도 이 초록색 들판을 우리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거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엄연히 초록색인 신호등도 '푸른 신호등'이라고 배워오지 않았던가. 이 무슨 말도안되는! 파란색과 초록색은 엄연히 색깔코드부터 다르고 색맹도 분간할 수 있을정도로 엄연히 다른색깔이구만. 그럼 태평양 바다도 초록색 바다라고 해도 되는가? 초록색 하늘이 참 멋지다. 라고 말하면 너 어디 아프니? 하늘이 초록색으로 보여? 라고 말해줄텐데 신호등이 파랗다고 하면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30분동안 머리를 싸맨끝에 얻어낸 결론은 '초록'은 우리말이 아니고 한자어라는 것이었다. 마치 위에서 쓴 BLACK을 검정으로 쓰면 표현이 안되는것처럼.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참 어이가 없다. 우리말은 다른언어보다 색깔표현이 엄청나게 풍부하다고 배워왔다. 불그스름, 푸르뎅뎅, 퍼렇다, 누리끼리하다, 노르스름하다, 노르대대하다, 샛노랗다 등등. 그런데 모니터에도 들어가는 RGB 삼원색에도 당당히 껴있는 녹색이,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구의 땅 대부분을 덮고있는 녹색이 우리말에 없는데 푸르뎅뎅 누리끼리면 뭐하나.
그럼 세종대왕 이후 한반도에서 살고있던 옛 조상들은 초록색으로 우거진 산과 들판을 봤을때 뭐라고 말했을까? 그때도 아 푸르른 들판과 산이로구나! 라고 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푸르다라는 말을 단순히 '파란색'으로 해석할게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자연의 색깔을 통칭하는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초록색을 표현하는 원래 말이 있었는데 한자어를 병행해서 쓰면서 퇴화했다면. (아니 왜 초록색만 없어지냐) 왜그랬을지도 궁금하다. 어쨌든 나는 GREEN으로 뒤덮인 자연을 보면서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누구 아는사람 있으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