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완 Apr 24. 2023

게임과 현실

올해 초, 생전 처음으로 콘솔게임기를 구입해봤습니다. 게임에 문외한인 제가 최신게임기인 PS5를 구입한게 아직까지도 어색한데요. 축구를 좋아하기때문에 예전에도 친구들과 플스방에 가서 축구게임을 재밌게 했기때문에 그것 하나 믿고 질렀습니다. 그리고 PC게임은 앞으로도 절대 안할것 같지만 콘솔게임은 왠지모르게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PS5를 샀다고하니 주변에서는 게임폐인되는 것 아냐? 라는 반응이지만 저는 크게 빠지지 않을것이라는걸 알고있었습니다.


제가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게임이 현실과 대척점에 있는 점 때문입니다. 게임개발자가 실수없이 잘 만들기만 했다면 게임은 그 속에서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완전무결한 세계를요. 예를들어 제가 주로하는 축구게임인 피파23에서 선수들은 애초에 입력된 능력치대로 언제나 최고의 플레이를 해냅니다. 감기에 걸리지도 않고 8시간 연속으로 뛰게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음바페는 현재 능력치가 가장 좋은 선수 중 한명인데 음바페를 쓰면 어떤 수비든 어떤 상대든 다 뚫어버릴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PSG(음바페 소속팀, 프랑스리그)는 음바페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을때도 있겠지만 게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넣으면 무조건 골을 넣는다는 공식이 따라주니까요. 


피파23의 모델 음바페와 케르

이처럼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하면 우리 게임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일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렇게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특이한 세계관이 만들어집니다. 게이머들이 그 세계관에 빠져들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게 플레이하는 것이 게임개발사가 가장 바라는 바입니다.


라디오를 만드는 작업자는 내구성과 음질과 휴대성이 좋은 라디오를 만들고 싶고, 돈까스를 만드는 요리사는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돈까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그 완벽이라는 지점에 점차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된다면 고객과 메이커 사이에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모두가 만족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게임은 뭔가 좀 다르다


그런데말이죠. 게임은 라디오나 돈까스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라디오는 현실 속 장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지루한 현실을 좀 더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우리는 라디오를 들을때도 눈은 현실을 바라봅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을때도 지나가는 차의 경적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누가 말을 걸어오면 라디오를 줄일수도 있습니다. 돈까스를 먹을때도 식당의 어느 한 자리에 앉아야하고 그 곳은 조명이 어떻고 기름에 튀겨지는 냄새를 미리 맡을수도 있습니다. 돈까스가 내 오감 전체를 전부 독차지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비디오게임의 숙명은 한 사람의 오감 전체를 장악하는 것입니다. 이 안에 완벽한 세계가 있으니 재밌게 놀다가라는 친절한 배려같지만 어딘지 저는 불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과의 완벽한 차단입니다. 8시간을 계속 플레이해도 음바페는 지치지 않고 계속 골을 만들어냅니다. 축구경기를 계속해도 관중이 '좀 쉬었다가 내일 다시하면 안될까'하는 불평을 하지않고 언제나 똑같은 제스처로 환호합니다. 게임이 중단되는 경우는 게이머가 배가 고파질 경우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골목에서, 또는 운동장에서 놀이(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게임도 비디오게임 못지않게 흡입력이 세긴하지만 어느정도 (2,3시간) 하고나면 같이 있던 친구들이 슬슬 집에가려고 합니다. 열명중에 한두명이 그런 사인을 보내기 시작하면 게임의 열기는 천천히 식고 나도 슬슬 집에 가야지하는 생각을 하게되죠. 그렇게 적당한 게임은 일상생활에 활력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게임의 여운이 남아 즐겁고 다음날도 오늘 이따가 또 할까?하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비디오게임에선 굳이 친구들을 불러모을 필요가 없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맞붙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끝이 없습니다. 2,3시간 정신없이 플레이하다가 문득 시계를 확인하긴 하지만 언제 끝내야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같이 플레이하는 친구라던가, 언제까지 게임할래? 하고 잔소리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것이 아니라면요. 게임내용이나 지속시간에 관한 반응(피드백)을 주고받는 대상이 없으니 게임을 마치고 돌아서서 잔잔하게 느껴지는 만족감이나 즐거움 따위는 없습니다. 가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면 온라인게임에 흠뻑 빠진 청소년 자녀가 등장할때가 있는데 이 친구들은 현실세계에서 다소 무기력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와의 대화도 성의가 없는 편입니다. 어, 알았다니까, 안해, 싫어, 밥줘. 이런식이죠.



그것이 게임의 숙명이라면


이렇게 게임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되라고 최선을 다해서 만든 게임이니까요. 그리고 비디오게임(PC 온라인게임 포함)의 숙명은 현실세계과 격리된 게임세계에서 게이머들이 최대한 오랜시간 머물게하는 것입니다. 


만약 게임의 본질이 그런것이라면 격리억제기를 써야합니다. 게임을 하면서 현실과 너무 격리되어 뇌가 멍해지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현실속에서 게임을 해야합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거대한 화면에 압도되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 보잘것없이 작은 모니터에서 주변환경이 잘 보이는 그런곳에서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경험을 한번 해봤는데, PS5가 원격플레이를 지원하길래 제 한옥숙소에 아이패드와 게임패드를 가지고나와 청소를 하는 중간에 게임을 해봤습니다. 이때 했던 '라스트 가디언'이라는 게임은 세계관이 조금 어두워 어두컴컴한 방에서 완전히 몰입돼서 했을 땐 어딘지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렇게 햇빛이 잘 들고 작은 모니터에 주변까지 잘 보이는 열악한 환경에서 플레이하니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악당이 쫓아오는데 그렇게 무섭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때의 경험 이후로 제 PS5를 어두컴컴한 방에서 빼고 햇빛이 잘드는 거실TV에 연결해 적당한 크기의 모니터에서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이렇게나 많이 발전했는데 열악한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모순이긴 하지만 제 나름대로 현실과 밸런스를 맞추려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게임이 원래부터 그러한 '것'이라면 그것을 인정하되 그것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나 나름대로 대처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겠죠. 저에게 있어서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과 '타인과 건강한 교류'입니다. 게임은 이 두가지와 상반되는 콘텐츠라서 제가 그동안 빠져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충고할 때 중요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