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집이 모이면 매력적인 장소가 된다
부산에 갔다가 바닷가에 있다는 죽성성당에 잠깐 들렀습니다. 푸른 바다가 바로 코앞에 펼쳐져 있는 특별한 성당이자 드라마 세트장이라길래 은근히 기대를 품고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이질적인 핫핑크색 첨탑칼라에 어느양식인지 알수없는 외관의 모습, 그리고 안에 들어갔더니 성당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부산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갤러리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습니다. 포토존이 있긴했지만 그것마저도 쌩한 칼라와 이질적인 형체가 마음에 들지않아 초고속 스피드로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저녁에 텔레비젼으로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여행프로그램을 봤는데, 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 지역이 나왔습니다. 바다를 향해서 오밀조밀 모여있는 여러 집들을 보면서 낮에 갔던 죽성성당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구경하기 원하는건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집이면 되는구나. 그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마을이기만 하면 되는구나.
얼마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던 튀르키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대단한 관광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스탄불에 갔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루모스크도, 아야소피아도, 그랜드바자르도 가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유명세보다는 자유로움과 소박하지만 정겨운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도시와 작은거리들을 돌아다니고 현지인이 찾는 작은 식당을 방문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와 아내만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있는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집과 마을’을 찾아다닙니다. 집은 누군가 살고있기때문에 집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해볼수도 없는데도요. 제가 사는 곳 주변에서 사람들이 많이찾는 대표적인 마을로는 안동 하회마을, 예천 금당실마을, 영주 무섬마을이 있습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집이 특별한 장소가 될수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될수있는 정도가 아니라 죽성성당보다 예쁜 집이 훨씬 더 낫습니다. 모든 집은 저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제가 이야기하는 예쁘고 좋은 집이란 집 다운 집입니다. 이런 집들이 여러개 모여있다면 그곳은 분명히 멋진곳이 되고 방문할만한 가치가 생기게됩니다.
누구나 멋지고 매력적인 장소에 가서 구경하고 싶어합니다. 모든 지자체와 나라, 그리고 사업주들은 그런 장소를 가지고 싶어하고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야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수있고 수익활동을 이어서 할수있으니까요. 그러기위해서는 바닷가에 죽성성당같은 엉뚱한 것을 만들기보다 집 다운 집, 걷고싶은 마을길을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집, 집 다운 집은 무엇인지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집은 크게 단독주책과 공동주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독주택은 크기가 작고 공동주택은 크기가 큰데, 공동주택에서도 크기가 엄청 큰 고층아파트가 있고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인 빌라와 연립주택처럼 크기가 적당한 주택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에서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2/3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적인 이유와 다른 수많은 조건 등을 따져봤을때 아파트가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주택보다 더 나은 선택일수도 있지만, 한국은 아파트의 비중이 너무 높고, 크기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제가 도시적 관점에서 아파트를 좋지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중에 한번 따로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래서 고층아파트는 단순히 크기가 크다는 이유로 매력적인 집이 될수없습니다. 고층아파트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지 않습니다. 도시의 야경을 멋지게 만들어줄순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사람사는 냄새를 나게하려면 절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을때 비로소 가능하게 할수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도시는 인구수가 3만명일지라도 거리에서 활기가 느껴지는 반면, 어떤 도시는 인구수가 50만명이 넘는 대도시지만 지루하고 건조한 느낌이 듭니다. 주택을 크게 짓든, 작게 짓든 그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른 선택의 결과지만 인구감소시대에 곧 맞닥뜨리게 될 재건축 문제와 도시다양성을 위해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이 한국에도 많아지길 바랍니다.
여러 나라들을 가서 구경하면서 좋다고 느꼈던 마을의 공통점은 집의 지붕형태가 박공(牔栱)이라는 것입니다. 박공은 'ㅅ'형태의 지붕을 말합니다. 지붕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빗물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면 빗물을 빠르게 땅으로 내려보낼 수 있게 지붕을 경사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집인 초가집도, 기와집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도시의 풍경을 보면 박공지붕보다 평탄한 지붕의 주택들을 많이 볼수있습니다. 이는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그리고 방수제품의 발전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아쉽습니다.
https://www.sejongnewspaper.com/27944
제가 사는곳도 자세히 살펴보면 평탄한 옥상 위에 지자체 보조사업을 받은것처럼 보이는 옥상지붕을 많이 볼수있습니다. 위 뉴스기사에서 보듯이 결국 옥상에 방수제품을 발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균열이 발생해 누수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방수액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박공지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집들도 결국 박공지붕을 가지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괜찮게 된 것일까요? 이럴거라면 애초에 집을 지을때 박공으로 만들어주세요. 옥상지붕의 가녀린 기둥보다 훨씬 견고하고 오래가는 멋진집이 될테니까요.
집을 둘러싸는 담장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담장의 높이가 3미터가 되지않는한 성인 누구나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담장이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물리적 위협의 차단이 아니라 거리의 익명의 시선으로부터 거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집을 지을때 반드시 담장도 같이 쌓아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이런저런 집안일을 많이했기때문에 담장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충분한 존재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예전처럼 마당에서 일을 많이 할까요? 담장이 굳이 없어도 거주민은 사생활을 충분히 보호받는 실내생활을 주로 합니다. 담장이 아주 높지않는 이상 외부인이 조금만 노력하면 담장 안쪽도 얼마든지 볼수있습니다. 결국 요즘의 담장이 하는 역할은 거의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전부터 담장을 만들었기때문에 그저 형식적으로 되풀이한것이라 볼수있습니다.
회색블록으로 쌓아올린 담장은 주택의 본체보다 훨씬 덜 중요하기때문에 제대로 가꿔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담장이 부서지고 무너지고 더러워져도 집주인이 신경쓰지 않아서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는 아주아주 많습니더. 지자체에서 그나마 벽화사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도시의 경관을 나아지게 하려고 애써보고있지만, 공들여 그린 벽화도 5년, 10년이 지나면 바래지고 벗겨져 원래 모습대로 돌아오거나 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감하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담장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않는다면 과감히 없애는 것이 어떨까요? 주택의 몸체가 그대로 거리에 드러나는게 정말로 안전을위협하는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