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일자리 도감>, <크리에이티브 클래스>를 읽고
최근 두 책을 연달아 읽었다. 오른쪽 <크리에이티브 클래스>를 먼저 읽고 오치아이 요이치라는 사람이 인상적이라 그가 공저로 참여한 왼쪽 <10년 후 일자리 도감>을 구입했다. 사실, 이 두번째 책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제목에서 볼수있듯 사람들이 기대하는 미래모습을 요약해서 명쾌한 답을 내야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정독보다는 속독으로 빠르게 읽어내려갔는데, 그래도 워낙 흥미로운 인물 두명이 쓴거라서 중간중간 흥미로운 시각과 견해는 어쩔수없이 드러났다. 그 중에서 마지막부분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내용 몇개를 소개해본다.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는 유연함을 잃는다. (중략) "매일 여러 직종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이유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재미있으니까." 우연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그것이 일이 되고 놀이도 된다. (중략) 새로운 것에 흥미를 잃으면 10대라도 노인이고,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추구하면 60대라도 청년이다. 더욱이 또래하고만 어울릴 경우, 나이 들어서 젊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또래랑만 어울리지 마라, 호리에 다카후미>
완전 동감이다. 또래랑만 어울렸을 때의 단점을 추가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그들과 비교하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나이의 그들과 내 처지가 비슷하면 '음, 이정도가 평균이군'라며 안주하거나, 반대로 만약 그들이 앞서나가고 있다면 질투나 열등감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또래가 아닌경우, 나이차이가 크게 나거나 하는 일까지 다른 사람과 어울릴때는 질투나 열등감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저 사람은 저렇네? 이 사람은 이런면이 있구나하고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자기와 비교를 하지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 동창이나 회사 동기들은 또래일 확률이 높다. 그런 친구들도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계속해서 다른 조건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나이 10살 정도는 가뿐하게 초월하여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인간관계는 다양해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미드90>이 떠올랐다. 한 소년의 성장일기를 담았으며, 힙해보이는 형들 무리에 들어가서 어설프게 흉내내며 좌충우돌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90년대 영상미와 감성으로 풀어낸 조금 특이한 영화다. 주인공인 소년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는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러 형들과 붙어다닌다. 이렇게 나이가 어릴때는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것도 좋지만 나이가 어느정도 들었을때는 (스무살 이후)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해야한다.
어떤 학생으로부터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그럴때는 "저녁 메뉴부터 정하자"라고 말한다. 먹고싶은게 딱히 떠오르지 않는 상태를 탈피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늘은 불고기가 당긴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 먹을지, 누구와 먹을지, 그 순간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해 "그럼 가자"라고 결정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늘 이런 느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막막하다면 일단 저녁 메뉴부터, 오치아이 요이치>
취미로 피아노를 연습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새로운 곡에 도전하기위해 새 악보를 내려받아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 악보의 난해함에 잠시 막막함을 느낀다. 이 곡을 언제쯤 마스터하게 될지 그 완성의 지점을 상상하면 어렵지만, 악보의 첫 한마디만 오늘 쳐보자고 마음먹으면 그런대로 할만하다. 몇페이지나 되는 곡 전체라고 해봤자 이 한마디 한마디가 수십개가 나열되어있을 뿐이다. 그런 가벼운 느낌으로 한달동안 매일 쳐나간다면 곡을 마스터하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앞으로 뭘 해야 먹고살수 있는지,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지 너무 원대한 계획을 세우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눈 앞에 보이는 사소한 것부터 뭔가 되는 느낌으로 직접 해보는것, 그것이 여러개 여러날 반복되면 큰 일도 해낼수있다. 완성의 지점을 섣불리 상상하지 않고 작은것부터 내가 직접 '된다는 느낌'으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처럼 의욕의 유무가 인간의 가치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것이다. (중략)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좋다. '나만 할수있는 일'은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된다. 포지션을 잡고, 다른 누구도 아닌 '개인'의 가치를 외치는 것이다.
<의욕이 가치를 결정한다, 오치아이 요이치>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인간의 일이 뭘까?를 자주 생각한다. 최근 챗GPT가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려주기 시작하면서 과거 디자인을 전공했던 나는 그러한 생각을 자주 하게됐다. 무엇을 해야 AI와 구별되고 AI로부터 안전한, 인간만의 일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단순히 돈을 벌고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충분히 주어지더라도 아무런 일을 하지않고 살아갈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AI의 발전덕분에 나의 존재의 이유,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다.
이 구절을 읽기전에 이와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적이 있다.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컴퓨터와 인공지능만 세상에 남겨진다면, 현재 챗GPT는 작동할 수 있을까? 질문이 없는 곳에는 빅데이터도 알고리즘도 추상적인 해답도 모두 쓰임새가 없다. AI는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품는 것, 그것은 '궁금해!'라는 욕망이고 이것은 AI가 할수없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한 척은 할수있겠지만)
예전에는 뭔가를 하고싶다는 욕망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뭘 하고싶은데? 그게 가치있는 것이어야 되는거지 쓸데없는 것을 하고싶어하면 안돼." 라고 모두들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욕망의 대상도 대상이지만 뭔가라도 하고싶어하는 그 상태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사람은 누구나 특성이 다르고 관심사와 능력이 다르다. 뭔가를 하고싶어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며, 그 OO이 지금은 하찮아 보일지라도 앞으로 다가올 대 AI시대에는 자기만의 경쟁력과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책에서 말한 '개인의 가치'는 그 '하고싶다'라는 욕망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