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예전부터 한번 블로그에 써보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아이디어가 있었다.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소중한 마음을 고백하는 '사랑의 기술'이다. 이 마법의 주문으로 나는 한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사람은 지금 아내가 되었다. 아이디어는 어느 영화 속 대사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영화 제목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 기억을 더듬어 해당 장면을 떠올려보면, 두 주인공은 아주 로맨틱한 순간을 함께하며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금 당신에게 키스하지 않는다고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는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다른 영화를 보다가 비슷한 느낌의 대사를 들었을 때 예전에 봤던 영화 속 이 대사가 다시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참 멋진 고백이네...
나는 어떤 부분이 멋지다고 생각했을까?
1. 좋아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전달하면서도 상대를 전혀 압박하지 않은 점
2. 상대에 대한 배려심과 나의 절제력을 동시에 멋지게 보여준 점
3. 무엇보다 가장 멋진건 상대방의 대답이 필요없다는 점
이 대사에는 두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너와 키스하고 싶어> 그리고 <넌 내게 매우 소중해>
이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전달하려면 이렇게 되고만다. <매우 소중한 그대여, 나랑 키스해 줄래요?>
이것은 굉장히 직설적인 화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현실에서 정말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글쎄다. 이렇게 키스를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질문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뒤따른다. 질문 그 자체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확인한다는 점에서 매우 젠틀하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다소 쑥스럽게 느껴지는 키스에 대해 '네, 그렇게 하세요' 라고 대답해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도 곤란하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게다가 질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굉장히 쑥스러운건 마찬가지라서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의사전달이 될리가 만무하다. <키스할까요?> 같은 대사는 영화, 연극 작품을 관객으로서 바라볼때는 근사하고 용감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1인칭이 되어 말을 하게되거나 2인칭이 되어 듣게 될 경우 굉장히 어색해지게 되어서 망설이게 된다. 즉, 이 대사에는 문제점이 많다.
내가 예전에 봤던 영화 속 대사 <제가 지금 당신에게...>가 쿨하다고 생각한건 이런 현실적 어려움들을 모두 해결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플러스, 나의 성숙함과 절제력까지 매력적으로 어필했다. 키스를 했나 하지않았나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연인이 되고싶어하는 이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키스'에 있지 않고 매력어필과 관계의 깊어짐에 있다. 키스는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깟 키스 하나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얻지못하고 오히려 사이가 어색해져 버린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키스'라는 주어자리에 '사귐'과 혹은 '섹스', '결혼'으로 대체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모든 사랑에는 사이좋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이가 좋지않은데 사귀고 잠자리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제가 지금 당신에게...>라는 말에는 현재 우리 둘 사이를 멀어지게하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잘 전달하고, 내가 멋진 사람임을 어필하면서 훗날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이 마법의 주문을 조금 더 현실적인 우리의 일반적인 상황에 적용시켜보자.
상대방을 먼저 좋아하게 됐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해주면 좋을텐데하며 마음을 졸인다. 그렇게 오랜 시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애를 써보지만 진전은 거북이걸음만큼 느리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내 간절한 마음을 하늘이 알아주기라고 했는지 잠깐이나마 둘만의 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존재를 알리며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착실히 키워간다. 대화라도 잠깐 나누면 참 좋을텐데 하다가도 대화를 어느정도 하게되면, 나중엔 밥이라도 같이 먹게 되면 좋을텐데, 산책이라도, 영화를 보고 술한잔 하고싶어진다. 운 좋게도 이 모든 것을 함께하고 메시지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면 정말로 큰 발전을 한 것이다. 메시지 하나에 웃음꽃이 피고 마음이 덩실대며 춤을 춘다. 처음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많이 온 것은 맞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다. 지금쯤 상대방의 마음은 얼만큼일까?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일까? 사랑을 원하는 이 사람은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고백해야 좋을까.
<너와 사귀고 싶어> <너는 내게 매우 소중해>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면 되는걸까?
<저기 있잖아,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나랑 사귈래?>
'남자들(여자들) 대부분은 이래", "여자들(남자들)은 달라'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하나의 성(姓)으로 선택되어 평생을 살다 가기때문에 내 성이 아닌 다른 이성(異性)을 굉장히 다른 존재인냥 특별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단 1초도 다른 성으로 살아보지 않았기때문에 '남자(여자)들은 원래 그래?'라고 물어보며 이성을 신비해하거나 궁금해하거나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성을 좋아하게 됐을 때 이성에 대한 무지와 환상이 뒤섞여서 이런 오해가 더욱 강해지기도 한다.
물론 다른점도 존재한다. 신체적인 차이 때문에 30만년의 세월동안 조금 다르게 진화해온 것은 맞다. 하지만 자잘한 차이점보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우리는 미세한 남녀차이같은 그런 가십거리를 흥미로워한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순간에도 이렇게 생각한다.
여자는 남자가 이렇게 해줘야 좋아할거야
겉으로는 싫다고해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것 아닐까?
이성을 외계에서 온 다른 생명체일거라 여기면 이런 큰 오해를 낳는다. 그렇지않다. 이성은 그저 생식기만 나와 다르게 디자인됐을 뿐 나머지 모든 자연의 감각, 운동원리, 인본주의적 사고, 삶의 다양한 감각들은 똑같다. 내가 어색하면 이성도 어색하고, 내가 즐거우면 이성도 즐거워한다. 이성이라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내 동성친구가 나와 개그코드가 다른것은 의심하지 않으면서, 이성이 내 개그에 웃지않으면 '여자들은 이런 개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봐'하고 단정지어버린다.
내가 흠모하는 그녀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다시 고백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내 따뜻한 마음을 잘 전달하려면 그녀가 특별한 여자라는 생각은 접고, 성숙한 인간으로서 나의 멋짐을 젠틀하게 어필하면 되는것이다. 멋지게 한번 고백하고나면, 내가 꽁꽁 싸매고있었던 과제는 이제 상대방에게 넘어갔으니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
마음을 전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 고백은 멋진 일이어야 한다.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 서로 에너지 레벨이 비슷하면 좋다. 너무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않다.
- 고백은 골 세레모니일뿐, 평소에 건강한 사이를 만들어놓자
제가 지금 당신에게 키스하지 않는다고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제가 OO씨에게 고백하지 않는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A나 B때문에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서 그래요
나는 이 영화 속 대사를 평범하게 한국 현실에 맞게 고백하는 상황으로 살짝 바꿔봤다. 두번째 문장은 고백의 무게를 덜어주고 문장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추가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A와 B자리에 현재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넣으면 된다. 학생에게는 공부나 시험, 직장인에게는 일이나 바쁜일정 등 상대방을 잘 관찰했다면 분명히 넣을 대상들이 있을것이다. 이 두번째 문장 역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이 고백멘트는 아무런 서사없이 불쑥 내뱉는다고 효과가 있는것이 절대 아니다. 고백을 하는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두 사람의 분위기가 좋았고 이전에도 서로 오가는 미묘한 신호가 있었지만 확실한 결정적인 기회가 없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그런 상황까지 만드는 것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며 그곳에는 정답이 없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어색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고백을 어려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썼다. 물론 이런 사랑의 기술을 전혀 모르고도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기도 했고, 마음을 괴상한 방법으로 표현한뒤 땅을 치며 후회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이성과 사귀기위해서 이런 고민을 한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고 싶었다. 지난날의 후회와 미련을 돌이켜보면, 이성을 어색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스스로 편안하지 않는 방식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달하려 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자신이 좀 더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그런 방식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솔직히 터놓자면 나는 이 마법의 주문을 써서 한번 거절당했고 한번 성공했는데, 두 번 모두 나 스스로 자연스러웠고 거절을 당했을때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 좋은건 거절을 했던 상대방도 덜 곤란해하고 덜 미안해했던 것 같다.
사랑고백은 이렇듯 별것 아닐 수 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맞이하는 작은 버스정류장 같은것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버스가 오면 타고 어디론가 가야한다. 그렇지만 정류장을 이용하지 않고는 버스를 탈수는 없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그 과정에서도 스스로 자존감을 유지한채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