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팬으로서 아쉬운 점
오랜만에 축구 이야기를 써본다. 나는 10대부터 축구를 무진장 좋아했고, 가끔 TV에 중계되는 유럽축구에 가슴 설렜던 기억이 선명하다. 국내에는 80년대 일찍이 출범했던 프로축구가 있었지만 거의 사람들의 관심바깥에 있었고 90년대 일본에서 J리그가 생기면서 가끔 일본축구를 시청했었다. 일본과 한국 국가대표가 맞붙으면 대부분 한국이 이겼던 90년대 이전과는 달리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일본축구는 정교해졌고 강해졌다. 그래서 매스컴에서는 뒤늦게 출범한 J리그 덕분에 일본축구의 상승세가 두려워할만한 수준이 되었고, 한국축구는 정신차리고 미래를 준비해야한다고 말했다. 90년대는 한국과 일본이 2002 월드컵 유치 경쟁관계에 있던터라 더욱 비교의 대상이 되었었다.
나는 고등학생때 축구를 점점 더 좋아하게됐고, 한국축구가 발전하려면 국내리그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스컴에서 연신 강조한것처럼 다른나라들, 특히 축구 선진국들을 보면 실제로 전부 그랬다. 국내리그가 허접한데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내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때마침 국내리그도 뭔가 발전의 기미가 보였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연고지 방식이 정착됐고 팬이 생겨났다. 특히 유럽의 응원문화를 흉내낸 서포터라는 열성적인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금은 서포터들이 골대뒤에서 깃발과 유니폼을 입고 노래하고 소리치는 모습이 일반적이지만 9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삼성팀이 새롭게 창단되면서 그러한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 J리그에서도 많이 봤던 모습이라 나는 그 모습이 무척 반가웠고 한국도 그런 축구문화를 갖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설렜다.
수원의 서포터 문화를 보기위해 나는 고등학생이었던 90년대 후반에 혼자서 광주에서 수원까지 가서 경기를 보고싶었다. 결국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그런 모습이 좋았다. 우리도 유럽처럼 재밌고 멋진 축구경기를 하길 바랬다. 그당시 내가 살던 광주지역의 연고팀은 없었기때문에 나는 공중파로 중계되는 다른 팀들의 리그경기를 챙겨서 보곤했다. 그렇게 챙겨봤던 경기들 중 하나는 바로 이 경기다. 결승전으로 기억하는데, 주요 장면을 유튜브로 시청할 수 있다.
사실 스포츠라기보다는 패싸움에 가까웠다. 발로 공을 차는게 아니라 사람을 걷어차는 장면이 이어졌다. 결승전이라는 긴장감은 상대를 밟아 쓰러뜨리겠다는 잔인함으로 대체됐다.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던 나는 축구다운 축구를 보지못해서 아쉽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직 재밌는 축구를 하기에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마음때문에 좌절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다. 이기고 지는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렸을때야 한국이 월드컵에서 이기길 바라고 평가전에서도 지면 짜증났지만 지금은 아무리 큰 대회라도 결과에 따라 기분이 요동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재밌고 멋진 축구를 하는 것, 과정을 잘 만들어가는 축구를 하는 것을 바란다. 그게 재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멋있게 플레이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졌다면 전혀 아쉽지 않다. 축구는 방금 끝났지만 다음경기가 또 기다리고 있다. 이번시즌에 결과가 안좋았다면 다음 시즌을 기다리면 된다. 50년이 지나고 내가 죽고나서도 축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잘 만들어가는 축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는 불타오르는 열정만으로 가질수없다. 뜨거운 긴장감만으로, 이번에 지면 죽는다는 처절함으로는 오히려 멋진축구를 할수없다. 평소에 멋진축구를 추구해야 그런 살얼음판일 결승전에서도 대체로 멋진축구를 만들어갈 수 있다.
부상당해 넘어져있는 선수들만 보다가
경기가 끝나는 것 같아...
K리그를 보면서 아쉬운 부분이다. 열정과 투지는 경기에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더해주지만 그게 지나칠때는 오히려 경기의 흐름을 끊는 악재가 된다. 더군다나 몸이 재산인 선수들에게 부상은 치명적이다. 몸으로 하는 스포츠이기때문에 몸을 사려서는 곤란하지만, 정도라는게 있다. 부상은 주로 헤딩경합 상황에서 많이 나온다. 공중볼을 따내려고 상대 선수와 1:1로 점프대결을 하는 것이다. 공중에서 몸이 세게 부딪혀 중심을 잃게되니 땅에 착지할 때 크게 다친다. 허리는 물론 손목과 어깨, 심지어 머리를 찧기도 한다. 해설자들이나 스태프들, 그리고 선수들은 이 헤딩경합을 투쟁과 의지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볼땐 전혀 그렇지않다. 한 선수가 높이 점프해 헤딩경합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선수가 따낸 공은 자기편에게 잘 전달될까? 내가 수없이 많이 봤던 축구경기에서는 꼭 그렇지 않았다. 공을 연결하는 것이 축구의 핵심인데, 공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경합은 무의미하다.
수준 높은 축구를 보면 바로 알수있다. 그들은 생각보다 헤딩경합을 그렇게 빡세게(?) 하지않는다. 영국에서 오래 활동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손흥민의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그가 몸을 사려서 그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K리그의 선수들이 지나치고 과격하게 헤딩경합을 한다. 열심히 하는것을 뭐라고 하는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않지만, 때로는 더 크고 넓게 봐야한다. 육체적, 정신적인 힘은 한계가 있기때문에 평소에 아껴놨다가 필요한 곳에 폭발적으로 써야한다. 공이 잘 연결되지도 않는 그런 헤딩경합에 에너지를 쓰면 체력이 고갈되고 정작 필요한 스프린트와 슈팅에 힘을 싣지 못하게될수도 있다. 게다가 부상위험도 매우 크다. 그리고 관중들은 축구경기를 보러왔지만 고통스러워하며 누워서 뒹굴거리는 축구선수들을 한 경기에 수차례 지켜봐야 한다. 경기의 흐름은 끊기고 선수는 괴롭고 공은 연결되지 않으며 관중들을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90년대 K리그는 패스 10번을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했다. 축구중계를 보면서 잠깐 한눈을 팔고 다시 보면 공은 이미 뺐겨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않다. 선진국처럼 2부리그와 승강제도 하는데, 2부리그 경기를 봐도 패스 연결은 예전보다 훨씬 매끄럽다. 그런점만 봐도 엄청난 발전을 했다.
국가대표의 실력이 아닌 자국리그의 수준으로 보면 한국은 확실히 뒤떨어져있다. 시설이나 관중수, 경기력과 디자인면에서 유럽과 일본에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최악이었던 90년대부터 K리그를 봐왔고 지금도 챙겨보고 앞으로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것이다. 멋지고 잘나가면 좋겠지만 중하위권 학생이 열심히 노력해서 중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도 나름 재밌기 때문이다. 축구 이야기는 오랜만에 써봤는데, 앞으로도 가끔 생각날때 나의 개똥같은 철학을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