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세상 보기

내 관점 가지기

by 인문학 이야기꾼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석고상 그리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키가 작아 맨 앞자리 석고상 바로 밑에 앉았는데 석고상을 쳐다보면 코가 유난히 크게 보였습니다. 당연히 코를 크게 그릴 수밖에 없었죠. 저보다 키가 좀 더 작은 친구는 앞자리 맨옆에 앉아 석고상을 그렸습니다. 귀를 유난히 크게 그렸지요. 코를 크게 그렸다고 해서, 귀를 크게 그렸다고 해서 그리기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본 대로 그렸으니까요.

관점(觀點)은 석고상을 볼 때의 시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그 사람이 보는 입장이나 생각하는 각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손을 볼 때 보는 위치에 따라 손바닥이 보일 수도 있고 손등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승되어야 할 훌륭한 가치로 교육받은 충(忠), 효(孝), 열(烈)과 같은 덕목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겠지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슬견설(虱犬說)’이라는 고전 수필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의 작품입니다. ‘슬(虱)’은 벼룩과 비슷한 ‘이’를 의미하고 ‘견(犬)’은 ‘개’를 의미하죠. 이와 개의 죽음에 관해 나그네와 주인이 대화를 나눕니다. 나그네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개를 몽둥이로 쳐 죽이는 데 너무 참혹하고 마음이 아파 앞으로 개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하자 주인은 “어떤 사람이 이를 화로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파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응수를 하죠.

나그네는 덩치가 크고 유용한 개와 미물인 이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주인이 자기를 놀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주인에게 화를 내죠. 이에 주인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개의 죽음이나 이의 죽음이 같다고 나그네를 설득하게 됩니다.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의 관점으로 보면 이의 죽음과 개의 죽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의 죽음이 개의 죽음보다 하찮은 것이 아니죠. 생명의 소중함이란 같은 것이니까요. 어떤 사물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사물을 주체로 본다면, 그리고 그 주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800년 전의 이 수필은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관점으로, 자신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관점과 다르면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고재종 시인(1957년~ )의 ‘첫사랑’이라는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고재종, ‘첫사랑’


시를 노래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하죠. 시인의 대리인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겨울에 피는 눈꽃과 봄에 피는 봄꽃을 관찰합니다. 슬쩍 보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 눈꽃은 과정보다 결과만 보이게 마련이죠. 눈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눈꽃을 피우는 과정이 보입니다. 눈꽃을 피우기 위한 눈의 노력과 도전이 눈물겹습니다. 수백 번의 도전 끝에 눈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금방 녹아버리고 말죠. 눈꽃이 녹은 그 자리에 봄이 되면 봄꽃이 핍니다. 시인은 이 과정을 사랑으로 보고 있습니다. 눈꽃을 첫사랑으로, 봄꽃을 성숙한 사랑으로 봅니다. 첫사랑은 도전과 노력과 시련 속에서 이룰 수 있지만, 지속되기 어렵다고 시인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눈꽃이 진 자리에 봄꽃을 피우듯, 우리네 삶도 첫사랑의 실패가 주는 아픔을 딛고 성숙한 사랑을 이룹니다.

보통 사람은 눈꽃과 봄꽃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관련성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눈꽃이 피면 그 자체로 감탄하고, 봄꽃이 피면 또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볼 뿐입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관점입니다. 시인은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은 내릴 뿐이고 우연히 조건이 맞아 눈꽃이 필 뿐인데, 이것을 눈은 나뭇가지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했다고 보는 겁니다. 핀 눈꽃이 녹는 것은 자연 현상일 뿐인데 이것을 시인은 첫사랑의 실패로 봅니다. 봄꽃이 피는 것도 보통 사람들은 자연현상으로 인식하죠. 눈꽃이 피었다가 진 자리에 핀 봄꽃이 더 아름답다는 인식도 하지 않습니다. 세심하게 관찰한 시인의 눈에는 더 아름다운 봄꽃으로 보입니다.

눈이 눈꽃을 피우는 과정이나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나 닮은 데가 있습니다. 나름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온몸으로 애쓰고 노력해 목표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그 목표가 허망하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기울인 정성과 노력이 컸으니 아픔도 크겠지요. 봄꽃이 눈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아픔을 이기고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힘이 우리네 삶 속에 있다는 것이 시인의 관점이 아니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