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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Jul 03. 2023

포목소사(枹木燒死)

소신(所信)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여러 아들이 후계 구도를 형성하며 왕위 쟁탈전을 벌입니다. 헌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중이(重耳)는 이 쟁탈전에서 밀려 자신을 따르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국외 망명 생활을 합니다. 19년 동안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온갖 고생을 다 합니다. 함께 고생하는 신하 중에 개자추(介子推)라는 신하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공자 중이(重耳)가 굶주릴 때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줍니다. 여기에서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을 받든다’는 할고봉군(割股奉君)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습니다.

  19년의 우여곡절 끝에 공자 중이는 진나라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 사람이 춘추오패(春秋五霸)의 한 사람인 진문공(晉文公)입니다. 문공은 자신과 함께 19년의 망명 생활을 한 신하들을 중용합니다. 이 논공행상(論功行賞)에 개자추는 소외됩니다. 아마 진문공이 깜빡했던 모양입니다. 소외된 개자추가 집에 와서 어머니께 ‘공을 가로챈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늘의 공을 탐한다’는 뜻의 탐천지공(貪天之功)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에 숨어버립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진문공은 개자추가 숨어 있는 면산에 가서 나와서 함께 일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개자추는 더 깊이 숨어버립니다. 불을 지르면 나오리라 판단한 진문공은 정말로 산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습니다. 이것이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다’는 뜻의 ‘포목소사(枹木燒死)’의 유래입니다.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개자추가 죽은 날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이것이 ‘찬 음식을 먹는다’는 뜻의 ‘한식(寒食)’의 유래입니다. 개자추가 죽은 산서성(山西省) 면산(綿山)에는 개자추의 사당과 무덤이 있으며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개자추가 나무를 끌어안고 죽은 이유가 무엇이겠는지요? 개인적으로 보면 할고봉군의 공이 있는 자신을 논공행상에서 재외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겠지요. 그러나 개인적인 서운함은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을 명분으로는 약합니다. 서운함을 잠시 내려놓고, 진문공이 면산까지 찾아왔을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갔다면 19년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상받을 수도 있었고, 어머니도 여생을 풍성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고, 진문공도 충신을 논공행상에서 제외했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면산에서 내려가는 것이 여러모로 손해보다는 이익이 훨씬 큰 선택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개자추가 포목소사한 둘째 이유이자 명분은 탐천지공에 대한 불만입니다. 논공행상 과정에서 하늘의 공을 탐할 정도로 아무 공이 없던 자가 할고봉군의 공이 있는 자신과 동급 내지 자신보다 더 높은 공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죠. 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는 할고봉군한 자신이 일등공신일 수 있지만, 주군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이 일등공신일 수 있습니다. 만약에 거짓 공을 내세운 사람들에게 벼슬을 주었다면 진문공이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霸者)가 될 수 있었겠는지요. 춘추시대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군주 중에서 으뜸이 된다는 것은 군주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군주와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면 진문공의 논공행상은 그렇게 불합리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진문공의 논공행상은 큰 무리가 없었지만 개자추가 볼 때에는 불합리하게 보였을 겁니다. 논공행상에서 소외된 개인적 서운함이 논공행상의 불합리성을 증폭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할고봉군한 자신보다 더 큰 공이 있는 사람은 없는데도 모두들 장관직 한 자리씩 차지하는 것이 개자추의 눈에는 용납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자들과 동급의 장관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진문공의 실수로 자신이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었겠지만 면산에 들어오는 명분은 탐천지공이라는 자신만의 소신(所信) 때문입니다. 이 소신이 결국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불귀의 객으로 만들고 만 것입니다. 아들의 소신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들의 신념이 최대의 불효를 저지르게 하고야 만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시은물구보 여인물추회(施恩勿求報 與人勿追悔)’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었으면 보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었으면 후회하지 말라’는 뜻이죠. 할고봉군했으니 그 대가를 바랐고, 그 대가가 충족되지 않으니 서운함이 있었을 테고, 그러니 포목소사까지 했겠지요. 개자추의 행위를 어리석음으로 본다면 그 어리석음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미생보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농부보다, 불식주속(不食周粟)의 백이숙제 형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까요. 개자추가 면산에서 나와 진문공이 춘추오패가 되는 데 일조를 했더라면 여러 사람에게 두루 이익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과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개자추의 신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자신만의 생각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개자추의 소신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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