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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Sep 18. 2023

구부러진 길이 좋은 이유

이준관,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한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목적은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입니다.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가 목적지만을 향해 거침없이 달립니다. 고속도로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도 좀 볼라치면 어김없이 가림막을 쳐놓아 볼 수도 없습니다. 고속도로는 앞만 보고 고속으로 달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산길을 걷는 목적은 걷는 자체가 목적입니다. 걷는 과정 자체가 목적지입니다. 걷는 과정에서 다람쥐도 만나고 새소리도 만나고 풀잎의 하늘거리는 소리도 만납니다. 민들레를 밥그릇 삼아 우아하게 식사하는 나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만남이 있으니 산길은 돌아갈수록 더욱 좋습니다. 직선 길에서는 만나지 못할, 청설모의 자맥질과 풀벌레의 교향악과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에게 입 가득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새의 모성애를 구부러진 길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 구부러진 길이 좋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네 삶도 직선의 삶이 있고, 우여곡절의 삶이 있습니다. 직선의 삶은 고속도로처럼 오직 전진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자신의 앞길에 돌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자신이 딛고 갈 디딤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해야 자신이 더 잘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는 길만이 옳은 길이고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의 길은 틀린 길로 간주해버립니다.

   우여곡절의 삶을 겪은 사람은 자신이 삶의 우여곡절을 경험했기에 남의 굽은 삶을 잘 이해합니다. 그런 굽은 삶도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서로 어울려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위로를 해 주면서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길을 함께 걸어갑니다. 그것을 삶의 재미로 느낍니다.      


  삶의 최종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 목적지를 향해 빨리 달릴 필요가 있겠는지요. 산길을 걷는 자체가 목적이듯 삶의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면 삶의 과정에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의 길이 좋지 않겠는지요. 시인은 이런 생각을 만들어주는 사명을 안고 태어난 듯합니다. [사진 출처] Unsplash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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