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주년 결혼기념일에
퇴근길, 걷기 좋은 날씨라 산행하듯 윤산 자락을 천천히 밟으며 왔소.
‘훅’하고 윤산의 가을 냄새가 가슴 깊이 들어왔소.
윤산의 그 가을 냄새가 35년 전의 가을로 나를 데려갔소.
윤산 자락을 밟으며 잠시나마 20대의 풋풋한 시절을 산책했소.
당신과 함께 향했던 시골 고향집으로의 초행길
덜컹거리던 버스 안에서 맡았던 고향길 들녘의 가을 냄새
그때 내 마음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황금 들녘만큼이나 풍요로웠소.
당신과 함께 할 앞으로의 우리 길이 황금 들녘만큼이나 향기롭기를 상상하는데
덜컹거리는 버스는 우리의 몸을 상상만큼이나 높이 ‘붕’ 솟아오르게 했소.
비포장도로가 익숙지 않았던 당신은 그 덜컹거림이 얼마나 낯설었겠소.
버스 뒤를 뭉게구름으로 따라오는 흙먼지도 낯설었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들어가는 시골길도 낯설었겠죠.
흙마당에 자리한 고향집의 다소곳함 또한 낯설었겠죠.
그 낯설음도 마다않고, 그 흙마당 고향집을 시집으로 선택하고
그 덜컹거림마저도 평온함으로 바꾸어준 당신!
그 고마움의 세월이 35년이나 되었소.
요즈음 당신 요리할 때
나는 당신 옆에서 당신 보조로, 설거짓거리가 나올 때마다 설거지하는 재미가 있소.
오늘 아침, 보조 셰프로서 임무를 망각하고
잠시 한눈파는 사이 당신이 내 일을 가로채어 설거지를 하기에
‘나의 일거리 빼앗지 말라’고 한 나의 말에
‘설거지는 나의 취미’라고 응수하던 당신 말이 내 출근길을 지배했소.
설거지와 빨래와 집안일이 진짜 취미일 수 있을까?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배려의 언어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아들 녀석 결혼식 때 아버지로서 주례사에 인용했던
‘복효근’ 시인의 ‘우산이 좁아서’라는 시가 다시 생각나더이다.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어 갈 때
내 어깨보다 덜 젖은 당신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던 시인의 마음을 넘어서
당신 어깨는 젖어도 뽀송뽀송한 남편 어깨를 보며
더 행복해하는 당신 모습에 내 모습을 살짝 포개어 보았소.
다행히 아들 녀석도 주례사 내용을 가슴에 안고 사는 것 같아
나는 날마다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소.
이 가을에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한 줄짜리 시가 ‘쿵쿵’ 가슴을 두드리오.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당신 생각만으로 행복의 미소가 번지는 당신 남편이 결혼 35주년을 맞이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