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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Oct 30. 2023

참 좋은 당신에게

-35주년 결혼기념일에

    퇴근길, 걷기 좋은 날씨라 산행하듯 윤산 자락을 천천히 밟으며 왔소.

    ‘훅’하고 윤산의 가을 냄새가 가슴 깊이 들어왔소.

    윤산의 그 가을 냄새가 35년 전의 가을로 나를 데려갔소.

    윤산 자락을 밟으며 잠시나마 20대의 풋풋한 시절을 산책했소.  

   

    당신과 함께 향했던 시골 고향집으로의 초행길

    덜컹거리던 버스 안에서 맡았던 고향길 들녘의 가을 냄새

    그때 내 마음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황금 들녘만큼이나 풍요로웠소.

    당신과 함께 할 앞으로의 우리 길이 황금 들녘만큼이나 향기롭기를 상상하는데

    덜컹거리는 버스는 우리의 몸을 상상만큼이나 높이 ‘붕’ 솟아오르게 했소.

    비포장도로가 익숙지 않았던 당신은 그 덜컹거림이 얼마나 낯설었겠소.

    버스 뒤를 뭉게구름으로 따라오는 흙먼지도 낯설었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들어가는 시골길도 낯설었겠죠.

    흙마당에 자리한 고향집의 다소곳함 또한 낯설었겠죠.

    그 낯설음도 마다않고, 그 흙마당 고향집을 시집으로 선택하고

    그 덜컹거림마저도 평온함으로 바꾸어준 당신!

    그 고마움의 세월이 35년이나 되었소.  

    

    요즈음 당신 요리할 때 

    나는 당신 옆에서 당신 보조로, 설거짓거리가 나올 때마다 설거지하는 재미가 있소.

    오늘 아침, 보조 셰프로서 임무를 망각하고 

    잠시 한눈파는 사이 당신이 내 일을 가로채어 설거지를 하기에

    ‘나의 일거리 빼앗지 말라’고 한 나의 말에

    ‘설거지는 나의 취미’라고 응수하던 당신 말이 내 출근길을 지배했소.

    설거지와 빨래와 집안일이 진짜 취미일 수 있을까?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배려의 언어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아들 녀석 결혼식 때 아버지로서 주례사에 인용했던

    ‘복효근’ 시인의 ‘우산이 좁아서’라는 시가 다시 생각나더이다.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어 갈 때

    내 어깨보다 덜 젖은 당신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던 시인의 마음을 넘어서

    당신 어깨는 젖어도 뽀송뽀송한 남편 어깨를 보며

    더 행복해하는 당신 모습에 내 모습을 살짝 포개어 보았소.

    다행히 아들 녀석도 주례사 내용을 가슴에 안고 사는 것 같아

    나는 날마다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소.  

   

    이 가을에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한 줄짜리 시가 ‘쿵쿵’ 가슴을 두드리오.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당신 생각만으로 행복의 미소가 번지는 당신 남편이 결혼 35주년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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