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성룡 May 14. 2022

파이  이야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원작 소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영화는 최초 상영관에서 한 번, 다운로드 한 파일로 한 번, 넷플릭스에서 한 번, 총 세 번을 봤는데 지루하지 않고 볼 때마다 재미있었다.

책을 구입한 것은, 원작을   알고 싶기도 하고, 영화에서 빠진 부분을 찾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몇몇 부분을 제외하곤 다른 곳이 없었다. 이안 감독이 영화에서 책의 대부분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파이 이야기’는 침몰한 화물선에서 탈출한 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소년과 리처드 파크라는 벵갈호랑이가 함께 구명보트를 타고 생존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야기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생존자 파텔의 진술인지, 아니면 작가 얀 마텔의 창작인지 불분명하다. 책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절반 이상은 얀 마텔의 창작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노트를 보면 화물선 침몰 사건이 실재하긴 한 모양이다.


작가는 이야기에서 두 가지 관점을 제공한다. 발이 부러진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갈호랑이가 한 배에 타서 살육전을 벌이고, 파이와 호랑이만 남아 긴장 속에 위험한 항해를 하는 이야기가 메인 줄거리. 다른 하나는 보험회사 직원들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는데 생존한 인간들끼리 벌이는 처절한 살육전 이야기다.


파텔은 두 가지 버전 이야기를 하고선, 보험사 직원에게 어느 게 나은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큐와 문학 중에 무엇을 택할 건지를 묻는다.

무엇을 택하든 결과는 변함없다. 인도에서 캐나다로 향하던 화물선이 침몰해 모두 물에 잠기고 파이라는 소년만 72일간의 표류 끝에 살아남았다는 것.


두 번째 이야기를 선택한다면, 애초부터 벵갈호랑이는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호랑이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논란이 많은데, 나는 인간 내면 속에 숨겨진 야만성 혹은 폭력성(또는 자연성)이라고 봤다. 문명과 종교 등으로 가려지고 은폐되지만, 그것은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언제든 튀어나온다. 그리고 사실은 문명 안에서도 늘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선악의 잣대로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를 동시에 믿으며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채식주의자 소년이(생존을 위해 처음 날치를 죽이고 통곡을 한다) 호랑이와 살면서 바다거북 내장을 날 것으로 씹어먹고 신선한 피를 마시며 생존하게 되면서, 그는 생명이라는 것이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유지되는 야만성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하게 된다.


책을 보면 뱅갈호랑이 리처드 파크가 처음 등장할 때 파이의 다리 아래에서 나타나는 장면을 읽을 수 있다. 또한 호랑이의 잔혹성은 하이에나(프랑스인 요리사)에게 학습된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단순히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본성과 이성 간의 투쟁만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은 제3의 관점을 생각하게 된다. 파이의 고향인 폰디체리가 인도의 프랑스령 식민지 수도라는 사실. 하이에나로 그려진 요리사가 하필 프랑스인이고, 발을 다친 얼룩말로 그려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선원은 중국인, 오랑우탄으로 분한 파이 엄마는 인도 사람이다.

하이에나가 다른 동물들을 차례로 먹어치우는 장면은 유럽 열강이 아시아와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과 닮았다.

제국주의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의 불씨가 되어 인도의 파키스탄 침공의 배경이 된다.

또한 제국주의는 아시아와 제3세계에 산업화를 이식시킨다. (인간의 살을 잘라내 낚시 미끼로 사용하는 장면이 산업화의 상징이 아닐까, 마음대로 해석함)


파이는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 미어캣만 사는 물에 뜨는 해초 섬에 도착한다. 겉으로 평화로운 해상낙원처럼 보이는 섬은 밤이 되면 나무들이 고기와 동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산(acid)에 녹여 흡수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란 걸 알게 된다.


이 섬이 상징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초를 소설은 끝내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문명 혹은 산업화 또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고 봤다. 똑같은 모양으로 군대처럼 행동하는 미어캣이 그 안에 사는 인간이라면, 각종 해양 생물과 인간을 녹여 시스템을 유지하는 섬 전체가 바로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닐까.

파이(파텔)는 섬에 평생 머물고자 했지만, 열매(사실은 잎 덩어리) 속에서 사람의 치아를 발견하고는 다음날 서둘러 리처드 파커를 데리고 빠져나온다.


* 아무튼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쓴 얀 마텔은 이 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고, 맨 부커상을 받는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남은 이들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