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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룡 May 14. 2022

영화 붉은 수수밭을 다시 보다

장예모 초기 작품들 감상

장예모의 초기 작품을 훑어보듯 보고 있다. 의도한  아니라 경순과 나의 영화 취향은 대부분 어긋나는데, 일치하는 지점이 장예모였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인생'과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봤고, 어제는 '귀주 이야기'와 '붉은 수수밭'을 봤다. 네 작품을 보면서 장예모의 중국 인민에 대한 사랑과 역사인식, 옛 것에 대한 향수, 모택동주의로 대변되는 중국 공산주의에 대한 애증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붉은 수수밭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지만 내 고등학생 시절 개봉돼 몇몇 장면만 가물가물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체 이야기를 이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장예모가 중국 대중 술이자 전통주인 고량주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 야생 수수밭의 의미 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어린 공리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18세 공리(추알)가 양조장을 운영하는 나병환자 리 씨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가는 이야기와 천민인 위잔아오와 정을 통하는 이야기는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닮은 점이 있다.


자칫 장애인에 대한 비하로 읽힐 수 있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몰락을 앞둔 봉건 지주의 탐욕과 무능력함을 수태능력을 잃은 병들고 무력한 남자(리 씨와 채털리)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은 두 작품 모두에서 무능한 남편 대신 노동자 계급의 씩씩한 남성(결코 우월적인 남성상은 아니다)과 사랑을 나눈다.


공리는 남편이 살해된 걸 알지만 살인범을 잡는 데는 관심 없다. 오히려 살인범이 섞여있는 노동자들과 양조장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이익을 똑같이 나누자고 한다.

몇 년이 흘러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산골마을인 십팔 리에도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진격해 온다.


일본군은 주민들을 강제 노역시켜 그 넓은 수수밭을 모두 뭉개고 없앤다. 도로와 철도를 놓기 위해서다. 반항자를 죽이고 산 사람 가죽을 벗기는 참상을 저지르자 마을 사람들은 반격을 준비하며 매복을 한다.

하지만 계획은 틀어지고 일본군에게 공리와 여자 일꾼이 죽자, 숨어 있던 노동자들이 고량주 항아리를 들고 총공세를 벌이고, 마침 폭탄이 터져 몰살을 한다.

그 순간 일식 현상이 일어 하늘과 땅, 사람과 수수밭, 세상 전체가 온통 붉은빛으로 뒤덮이며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붉은색은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고, 홍군의 색이기도 하다. 인민의 피를 상징하기도 하고, 노동의 산물을 뜻하기도 한다.

첫 장면에서 공리는 당연히 붉은 신부복을 입고 붉은색 가마를 타고 나온다.

귀주 이야기에서도 공리는 촌스런 붉은색 옷을 입고 나온다.


장예모 영화에는 자주 모택동 주석의 사진이나 그림이 의미 있게 등장을 하는데, 비판 일색도 아니고 찬양 일색도 아니다. 귀주 이야기나 인생에서도 사회주의에 이념과 지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그리지만, 그것을 담는 그릇인 관료주의는 언제나 민중의 삶과 불화하고 삐걱댄다. 그러다가 결국엔 주인공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인지 장예모 영화는 외국에서는 찬사와 호평으로 받고 큰 상도 많이 타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정부가 불편하게 받아들여서인지 출국금지나 상영금지를 자주 당했다.

영화에서 표현된 공산당 정부의 경직성과 관료주의적 폐단을 현실이 입증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옛말이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장예모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 중화주의 선전 영화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초기 작품에서 보인 이런 향수와 문제의식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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