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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룡 May 18. 2023

하인리히의 법칙과 중대재해처벌법

기업살인에 관대한 사회

최근 진주 제지업체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지역 노동 관련 단체나 노조, 노총에서 왜 거의 아무런 입장 발표도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알기로 정의당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법 강화를 주장하는 성명을 냈고, 진보당에서는 좀 의아하게도 사망노동자를 추모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진주같이에서는 ‘사람 죽이는 기업’이라는 표현을 써서 최근 5년 안에 3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무림페이퍼 사측을 비판하고,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조사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이 모두다.


해당 기업에는 한국노총에 가입된 노조가 엄연히 존재하고 사망자도 노조원이었던 것으로 안다. 전해 들은 말로 볼 때 노조는 이번 사망사고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것을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이미 2018년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대형 롤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2년 전인 2021년에는 50대 노동자가 감전사고로 사망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노조나 지역 노총지부로부터 거의 아무런 입장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노조 쪽에서는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있던 직접 당사자나 작업 지시자의 신변이 위협받지 않을지, 나아가 혹 회사의 위기로 일자리가 위태로워지지 않을지를 먼저 염려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서 손실통계 업무를 담당하던 하인리히가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사망사고 한 건이 발생할 경우 이미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인한 경상사고가 29건 일어나고, 가벼운 부상이나 위험한 순간이 300회 이상 먼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인리히는 이러한 결과 분석을 엮어 책을 냈다. 그리고 중대산업재해에서 나타나는 1:29:300이라는 비율이 거의 법칙처럼 들어맞는다 하여 하인리히의 법칙이라 불린다.  법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면, 경미한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을 때 위험 요인을 진단하고 미리 예방조치를 했더라면 충분히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고는 피해 당사자의 실수나 책임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며, 사업장 내 모든 사람이 잠재적 피해 당사자이던 것을 사고 당사자가 먼저 당한 것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근거가 된다. 모든 중대재해는 사전에 잦은 경상사고나 위험인자가 노출 되기 마련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망과 같은 중대 재해는 사고가 단 한차례 발생하더라도 시스템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고 시스템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경영자나 기업주에게 그 책임이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지닌 4월 6일 중대재해처벌법 첫 판결이 내려졌다. 건설현장 추락 사망사고로 인해 관련법이 적용이 돼 피소된 지 1년 2개월 만에 내려진 판결이었는데, 원청업체 기업주에게 내려진 처벌은 벌금 3천만 원이 고작이었다.  기업주들로서는 그것도 많다 할지 모르겠으나, 법 제정 취지를 담아내지 못한 솜방망이 처벌이다.

애초 추진했던 법률 이름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 기업‘ 두 글자가 빠질 때부터 예견된 일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노조의 태도나 기업 쪽의 태도, 사법당국이나 언론의 태도 모든 것이 쓰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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