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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an 24. 2024

해양력, 지정학 부활의 시대 개막

"가치 동맹"의 환상에서 벗어나 외교전략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

https://youtu.be/6vRxlXHH4H8?si=a9St1YYWfoMle2Iy

알프레드 마한이 19세기 후반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고 뒤이어 열강들의 건함 경쟁이 시작된지 100년 만에 세계는 다시 해양력과 지정학의 시대로 완전히 진입하게 되었다. 중동에서는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서구권의 선박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해상 운송 및 세계 무역을 방해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미영 연합군은 "번영 수호자 작전"이라는 목표 아래 예멘 공습에 나서며 중동 분쟁이 더욱 확대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대만에서는 반중 성향의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며 앞으로의 양안관계의 불투명성이 증대함과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중 패권 경쟁 및 대리전의 심화가 예상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흑해와 크림반도가 해상 경쟁이 벌어질 지점으로 점쳐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단 2024년 현재 상황에서 해군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서구권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해군의 규모는 중국이 점점 미국을 능가하고 있는 추세로 가는 중이고 규모 순위는 중국, 미국, 러시아 순이지만 미국의 동맹국들, 즉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의 해군 군사력 규모를 합쳤을 경우에는 제법 우위에 있는 상황이다. 또 해군 군사력의 기술 측면에서도 특히 항공모함 위주의 전력에서는 미국이 중국보다 앞서있는 것 역시 사실이고 잠수함 전력도 미국 중심의 서구권이 가장 발전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미국이 현재로선 중국보다 해양력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https://www.economist.com/international/2024/01/11/welcome-to-the-new-era-of-global-sea-power

그러나 서구 열강에 있어서 걱정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런 우위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부분이다. 중국 해군의 선박 건조 속도 및 능력은 갈 수록 향상되고 있지만 미국은 계속 시들어가고 있는 추세다. 동시에 나토 체제 하에 편입되어 있는 유럽 해군은 1999년부터 2018년 사이에 잠수함의 28%, 호위함 및 구축함의 32%를 감축하여 이전 모습보다 더 퇴보한 상태다. 작년인 2023년 전 세계 선박의 평균 일일 수입을 측정한 ClarkSea라는 조사기관에 따르면 10년 전보다 33% 증가 및 해상 무역은 3% 증가한 124억 톤에 이르렀고, 글로벌 조선업은 10% 증가했는데 여기서 중국은 처음으로 글로벌 조선업의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아무리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 무역의 약 80%가 해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이는 분명 위협적이라 할 만한 면모다.


해양력은 21세기의 각자도생 시대 혹은 자국 우선주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1년 에버 기든이라는 화물선이 좌초로 인해 수에즈 운하의 운영을 막았던 해프닝이 있었을 것이고 특히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흑해 항구의 봉쇄 및 대러 제재로 인하여 전 세계의 곡물 시장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던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시작된 후티 반군의 홍해 해상 봉쇄로 인해 촉발된 미영 연합군의 예멘 공습은 훨씬 더 해양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후티 반군은 단순하게 노략질을 하는 소말리아 해적과는 달리 미사일 공격을 통해 해상을 봉쇄하는 실력을 갖춘 유사 정규군이었고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해상 루트로 선박이 노선을 변경함에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의 화물 운송 비용이 3배로 늘어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해양을 중심으로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해양력 다툼이 그러한 사례일 것인데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및 중국 해군 함정, 잠수함 추적을 위해 협력할 만한 아시아 혹은 태평양 인근의 국가들을 끌여들여 대비책을 세웠다. 첫번째로 가동된 것은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라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한 대항책으로 출발된 기구였고 두번째는 오커스(AUKUS)라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앵글로 색슨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태평양에서의 중국 해군의 진출을 저지하는 목표를 가진 군사동맹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이처럼 중국과 분쟁이 있거나 잠재적으로 대립할 만한 국가들을 쿼드, 오커스 같은 기구로 끌여들여 중국의 해양력 진출 강화를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대항하고 있는가? 일단 기초적인 대응으로는 해군 군사력을 지난 10년 동안 크게 증가하는 움직임을 보였었다. 랴오닝, 산둥에 이어 세번째 항공모함인 푸젠을 배치하려고 움직이는가 하면서도 해군육전대의 규모 증강을 추진하여 남중국해 분쟁과 센카쿠 열도의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있다. 그 증강의 축은 타 야전군 병력을 해체,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일부 야전군 병력과 특수전여단 병력을 육전대에 통합시키는 형식이며 이 방향을 추진하여 지금까지 증원한 병력은 약 5만명 수준이다. 중국은 해군육전대 증강을 통해 최종적으로 2만명에서 10만여명의 거대한 육전대 병력을 만드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려 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군 해군육전대는 공세형 전력으로서 재해권 확보를 전제로 전선을 다변화시키고 신속하게 병력을 배치시킬 수 있는 유용한 병력인데 이는 지역위수 대신 일부 병력을 더욱 정예화하고 분쟁을 하는 주변국들(대만, 동남아, 한국 등)공세적 작전에 적극 투입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 중국은 해상 물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세계 각국의 항만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남태평양의 바누아투, 파키스탄의 과다르, 적도 기니의 바타 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더 나아가 미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카리브해와 남미의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에도 진출한 상황이며 홍해 루트 봉쇄 상황 속에서 후티 반군과 모종의 합의를 보고 그대로 그 루트를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러시아가 추진하는 북방 해상 루트 개척에도 나서는 등 대안 해상 루트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가 주변에 적들을 많이 양산해냈고 또 우리 입장에서 좋게 보여지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중국의 최근 행보는 자기들 나름대로 전략적인 관점에서 움직이고 있는 측면 또한 있으며 단순히 가볍게 보고 단점을 조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보다는 그들의 강점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는 게 우리 국익 입장에서 최선이라고 본다.


내 생각으로는, 어디까지나 뇌피셜에 불과하지만 중국이 대만과 맞붙는다면 상륙전 감행을 통한 전면전보다는 봉쇄 조치 위주로 진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대만 군사력이 결코 약한 편은 아니고 방어 태세가 꽤 견고한지라 상륙전 감행 시 중국군의 피해도 예상보다 클 것이기에 전면전 카드만 보유하여 협박한 채 해상 봉쇄를 통해 말려죽이는 방식이 그나마 중국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방법일 것이다. 2023년 기준 중국은 대만의 최대 수출국으로 전체 수출액의 38.8%를 차지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라이칭더의 당선과 함께 중국이 대항 카드로 꺼내든 것은 군사적인 압박 시도보다는 경제적인 공격 쪽이었다. 따라서 일부 미국 군사전문가들 이야기처럼 아마 최악의 가정 하의 양안 충돌이 벌어진다면 중국은 대만을 봉쇄하고 천연가스 비축량이 다 떨어지는 보름까지 기다릴 가능성도 있다는 말. 이러한 새로운 해양력 시대에서 경쟁하려면 더 거대한 해군과 이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외교는 항구, 해양 동맹, 무역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반도의 상황 역시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최근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다들 들었을 텐데 여기서 극초음속 미사일이었다는 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북한은 세 차례에 걸쳐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는데 대부분 정점 구도 30~60km에 머물렀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보는 시각들이 있는데, 일례로 한 일본 언론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이 정점고도 약 50km 이상으로 최소 500km를 비행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만약 이 추측대로 정점고도 50km였다면 군 당국이 예측한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극초음속 미사일 3가지 가능성과 들어맞는다.


공교롭게도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논란으로부터 얼마 전에는 북한의 김정은이 전쟁 발생 시 대한민국을 완전 점령하여 편입시키겠다는 초강경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김정은의 발언 내용 중에서 "헤어질 결심"이나 기존의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북한의 대외 전략 자체가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념 대신 적대적인 두 국가라는 개념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국가로 보는 것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으며 그래서 북한은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반국가단체이지만 실질적인 국가로 대접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상의 입장조차 포기한 채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하며 헤어질 결심을 입에 굳이 올렸다는 것은 그동안의 남북관계 속 암묵적인 룰이 최소한의 조각도 안 남은 채 완전히 깨져버렸다는 얘기다.


작년 8월 통일부 주최로 열린 행사에 공격적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부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북한의 핵보유가 한반도에서 미중 간 직접적인 대립을 최대한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원래부터 미어샤이머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 해법의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회의적인 의견을 보여왔던 만큼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북한을 비핵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인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보수 정권이든, 민주당 정권이든 비록 강경책, 유화책 사이에서 방법론적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북한을 반드시 비핵화시킨다는 강박적인 목표 하나는 동일했었고 그 결과가 지금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를 초래하게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119/0002744484?sid=100

그러나 북핵이 완성 단계에 이르고 북한이 대외 전략 방침을 바꾸는 지금에 와서는 생각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북핵을 지금 시점에서 비핵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북폭" 내지는 "선제 타격"이라 불리는 방법 말고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걸 실제로 감행했을 때 실현 가능성은 둘째 치고서 어떠한 후폭풍이 찾아올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미어샤이머는 이어서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면 안보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고 그 말은 중국이 한반도 상황에 지금보다 더 깊이 관여할 것이라는 얘기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떠나서 그가 말한 목적으로 분석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봤을 때 미중 경쟁구도가 한반도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가장 이득이 되는 시나리오로 작용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중 경쟁구도의 중심지는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이고 그 발화점으로 한반도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유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의외로 깊이 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현재 중국은 북한에 확장억제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은 북한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북한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지켜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면 오히려 더 취약한 상황이 되는데 그 이유는 주한미군 2만 5,000명이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더 깊이 한반도 문제에 관여할 경우 미중이 한반도에서 직접 대립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 말은 재래식 전쟁 위협이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핵보유가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궁극적인 힘인 아이러니함도 있으며 한반도에서 안정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자체 핵보유라는 게 미어샤이머 교수의 견해다.


"가치 동맹"이라는 것도 환상인 걸 직시해야 한다. 냉정하게 보자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은 각 국에 기지를 건설하는 매우 값비싼 형태의 "해외 파병" 형식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중국은 반면 A2/AD 전략을 앞세워 본토에서 한국, 일본, 대만을 겨냥하고 어느 방면을 공세로 전환할지 자유로히 정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이 미국과 가치적으로 묶인다고 쳐도 중국에 대항하여 동맹국을 지키는 미국의 비용이 증가할 수록 미국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최소한의 안전보장을 제공하는거 이외에, 경제, 외교, 문화등의 비군사 분야에서 이 지역에 깊이 말려들거나 미국의 동맹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자제하게 될 확률이 높다. 왜냐면 미국의 대중국 전선은 그들 입장에서 커다란 소모전이고 실제로도 최근 몇년 간 점차 동맹을 지키기 위한 지출을 줄여가는 방향의 "고립주의" 노선으로 회귀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역시도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고 조금씩 동맹국 배려 혜택에서 발을 빼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면 미국의 힘을 이용해 중국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에 역부족일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이라는 얘기로 만약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동맹으로 묶인다고 한들 미국이 앞으로 안전보장 이외에 어떤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미국은 고립주의의 상징 트럼프를 거쳐 IRA, CHIP 4를 앞세운 바이든 때까지에 오면서 동맹에 대한 태도가 수비적, 자국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건 엄밀히 말해 미중 패권경쟁이랑 과거 미소 냉전이랑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련은 군사적 카드 이외에 유럽에 투사할 만한 분야가 부족했지만 문제는 오늘날 중국은 몇몇 분야에서 미국을 바짝 쫓아가면서 군사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미국이 동맹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대량 소모전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군사 분야를 제외하고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인 비용을 거의 예측하지 않아도 되었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은 그것에 비해 비교적 위협이 훨씬 명확하며 미국은 자신의 동맹을 지키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 예측이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미국은 미중대결에서 점점 자국 우선, 이성적 선택을 할 것이고 한국인들이 환상을 가진 미국이 지켜주는 "가치 동맹"으로서의 한미동맹은 현실과는 다른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한국은 냉전적 고정관념과 미국에 의존하려는 "가치 동맹"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각자도생 시대에 맞춰 미국의 안전보장을 최소한의 전력으로만 상정하는 식으로 미국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다방면에 존재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할 합리적인 처신을 해야 하며, 중국의 부상에 대처할 합리적인 국가전략을 계속 탐구해나가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 외교 전략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대만과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패권 경쟁 외에도 북한의 최근 행보 등은 우리가 그동안 보수 정권, 민주당 정권 가리지 않고 취해온 외교 방침의 효율성이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대화로든, 대북 제재로든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점이라 우리 스스로 무언가 새로운 대책을 세워 북한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도 구체적인 방안은 솔직히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것이 미어샤이머 교수가 얘기한 북한 핵-한국 핵 동시 보유든, 아니면 일본과의 군사 협력 혹은 보통국가화를 인정하여 대중-대북 억지력을 갖추게 해 안보 위협에 맞서 공동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방법이든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 찾아왔다.

현재 대한민국의 외교 전략, 더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렸다. 중국의 패권국화와 대만 위기설, 미국의 IRA와 러시아의 북한과의 밀착이라는 초거대 악재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 상황인데 정말 각자도생 시대가 다가온 것이 너무 잘 체감되는 요즘이다. 이런 세계질서 대격변의 시대일수록 19세기 당시 영국총리를 지낸 파머스턴 경이 "영원한 친구도 없도 적도 없다. 오로지 우리의 영원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냉정히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겠다만 한반도 지정학의 특성상 저런 시도조차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가 쉽다. 특히 이제 규칙 기반 질서(일극 패권)가 서서히 저물어 가며 고립주의, 자국 우선주의 중심의 시대가 열리는 상황이니 더더욱.


즉 미중러일 4강에 대한 무조건적인 친(親)과 무조건적인 반(反)은 곤란하다는 얘기며 자칫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기가 쉽기에 주변 4강과의 외교에서 유연하게 국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먼저 미국과의 관계는 동맹을 견고히 하면서도 그들의 내부 정치상황까지 고려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응해나가야 하며 일본과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과는 러시아-튀르키예 관계처럼 상호주의에 입각해 안보 위협에 단호히 대응하는 한편으로 무조건 감정적인 적대는 피하며  러시아는 미중일의 협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키포인트 겸 중재자 위치로 둘 수 있는 카드 정도로 만들어야 놔야 한다. 그것이 도덕이나 선악의 프레임보다는 국익에 따른 판단이 앞서게 되는 각자도생, 자국 우선주의 시대 속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지정학적 생존 목표라고 생각한다.


과거 고려의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을 지은 것이 옛 고구려의 영토였던 강동 6주를 되찾은 것을 넘어 훗날 거란과의 전쟁에서 고려가 승리할 만한 기반을 마련했던 것처럼 2024년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외교 전략 대전환의 중요성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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