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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Apr 24. 2024

기다린다는 말이 응원이 될 때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이루기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땐,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는다고 완전히 치료될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걱정되었다. 혹시나 사소한 사건으로 다시 재발하지 않을지 두려웠고 의욕이 없는 상태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다.


하지만, 약을 먹고 나면 해이해지고 생각이 줄어든다.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고 어쩌다 보니 하루가 이미 흘러 밤이 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거나 잘 읽히지도 않는 책을 펼쳐 들고 뇌리에 남지도 않는 글을 읽었다. 무슨 일을 해도 흥미가 없고 웃을 일이 거의 없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랄까. 3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어떤 방식으로 직장 생활을 보냈는지 까마득히 잊을 정도는 아니지만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보니 약을 먹으며 겨우 버티고 괜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두뇌가 쉬도록 방치한 셈이다.


약을 먹는다고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으나 나 자신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걸 현저히 느꼈다. 해서 상태가 호전된 것 같은 시기에 스스로 약을 끊었다. 정신과 치료제를 갑자기 끊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글을 보았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그런 부작용이 없어 보였다.


약을 끊은 지 한 달 정도 지났고 아직 완전히 말짱한 상태가 아닌 걸 인지한다. 그렇다고 위험한 수준도 아니다. 이제는 슬슬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며칠 전에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감격하며 울컥했을 정도니까.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찾아본다. 편안한 분위기의 플레이리스트라든지, 사소하지만 동료끼리 관심 어린 말을 주고받는다든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소소하게 기부를 한다든지 말이다. 그러던 중에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조울증, 정신 분열, 조현병, 공황장애 등이 정신 장애에 속한다.

정신 장애 등급은 GAF라는 DSM-IV에서 사용하는 평가 도구를 사용하는데, 개인의 심리적, 사회적, 직업적 기능을 점수로 환산하여 정신장애 등급을 나누게 된다고 한다.

정신장애 등급 및 종류 알아보기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다시 말해 나도 장애인이었다. 등급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도 정신 장애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이란 사고로 다치거나 선천적인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와 같은 신체장애인만을 생각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공황장애도 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는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울증을 앓기 전의 나라면 장애인을 안쓰럽고 불쌍한 존재라고 여겼었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한국이 장애인에 대해 여러모로 지원해 주고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게 어딜 가든 장애인 주차 구역이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장애인이 보편적이라는 걸 의미하며 일상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최근 들어 소수자를 지지하고 복지와 인권을 강조하는 정치인도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이 아니었던 내가 한편으로 장애인에 소속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위로가 되었다. 스스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기다려 주길 바랐다. 더 좋은 상태로 회복될 날을 기다려 주길 바라고 더 나은 모습으로 웃는 날을 기다려 주길 바란다.


마치 최근에 읽은 히즈빈스 카페에 관한 기사에서 장애인 직원을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고 지원하고 이끌어 주는지 인터뷰했던 것처럼 말이다. "관심과 지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위생이나 서비스 교육 등을 진행할 때도 각자의 속도에 맞춘다. 금방 할 수 있는 분도 있지만, 몇 년이 되어도 샷을 못 내리시는 분도 있다.."

출처: 15년간 도전해 매출 50억 돌파… ‘정신장애인은 일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다

https://www.futurechosun.com/archives/86592


잘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어쩌면 삶에 지치고 방향을 잃는 순간이 결국 급하게 결정을 내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겨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가끔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걷는 법도 필요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음마를 뗄 때도 부모님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기다린다. 넘어져도 기다리고 느려도 기다린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분명 해낼 거라 믿으니까.


인생의 모든 일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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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즈빈스 : 우울증을 가진 저는, 바리스타입니다 (longblac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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