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그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보호필름이 깨졌다. 하지만,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교체할 의지가 없다. 가방만 덩그러니 바닥에 던지고 힘없이 침대에 누웠다.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뉴에이지 플레이리스트가 재생 중이다.
또 그날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 아등바등 살아서 월급을 받고 한달살이를 하고 나면 또 다음 한달살이를 하면서 보낸다. 반복되는 일상은 새로운 즐거움이 없어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시도하고 싶은 의지가 없다. 굳이 귀찮고 지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뿐이다.
항우울제를 끊은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우울증은 완전히 호전되지 않았으나 날씨처럼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정신적으로 자극을 받아 급격히 우울해질 때가 있긴 하다. 그러다 평안한 환경에 놓이면 조금 괜찮아진다. 해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심적인 안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동거 중인 남자 친구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지면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게 된다. 그게 가장 편안하다. 30분이 흐르고 한 시간이 흘러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여전히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죽음으로 마무리한들 또 어떤 뒷일이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무심코 핸드폰을 뒤적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읽게 되었다.
https://www.instagram.com/p/C5n0lYXxSoZ/?igsh=MXR0OWNqa2Vjano1ag==
너무 힘든 사람한테 힘내라고 하지 마. 왜냐고? 그 사람은 이미 엄청 엄청 힘내고 있는데도, 힘들어서 그런 거거든. 그럴 때 그냥 안아줘. 말없이 그냥 안아줘. 이 사람이 이렇게나 힘들었구나, 이렇게나 지쳐있었구나 하고 토닥여줘. 오히려 말보다 더 큰 힘이 될 거야.
마음이 힘든데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했다. 잘 나가고 있는 친구에게 우울하다고 알리면 괜히 발목 잡는 거 같았고 나이 든 부모님께 말하려니 괜히 마음고생만 시킬 거 같아 그만뒀다. 그렇다고 남자 친구에게 말하자니 부담만 줄 거 같았다.
몸이 아플 때는 종합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되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정신과 치료로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병이 되었고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자꾸 되뇌게 되었다. 다행히 피곤해서 잠에 들고 나면 생각이 잦아든다. 잠시라도 쉬어가는 타임이다.
이튿날은 어김없이 출근해야 한다. 평소대로 알람 소리에 깨어나 헬스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이동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이 컨디션으로는 웨이트 하기 무리일 거 같아 스트레칭 존에서 느긋하게 30분 동안 스트레칭만 했다. 곧 출근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샤워실로 향했다. 씻고 나왔더니 마침 아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른 오전 시간에 웬일인가 싶었는데, 본인이 지금 진행 중인 업무에 차질이 생겨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솔루션을 나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알려주었다. (제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에게는 도움 되는 조언이었던 거 같다.)
전화를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 뜨거운 게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찾지 못했던 삶의 의미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놓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선배의 입장에서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는 존재, 만나면 즐겁고 든든한 친구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존재, 완벽하진 않아도 깨알 센스로 융통성 있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 혈육 관계를 떠나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존재, 만난 적은 없으나 묵묵히 기부하며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매일 신난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난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일시적인 쾌락을 만족시키는 방식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로 의미가 있고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