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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May 12. 2024

그 아이의 집

이젠 안녕, 오랫동안 고마웠어

나는 혼자서만 총 9번 이사를 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이사한 것을 합친다면 13번 정도가 될 것이다. 쌓여간 이사 경험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건 이삿짐을 전부 들어내고 처음 들어온 모습 그대로 남은 집의 풍경이다. 이곳저곳 시간의 흔적만 남은 채, 내가 머문 기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왠지 모르게 추워보이는 빈 집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혹시 미처 챙기지 못한 게 없나 둘러본 후, 마음 속으로 잘 있으라고 인사를 하고 나와도 묘하게 슬픈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새집으로 이동해 전쟁 같은 이삿짐 풀기를 진행하다 보면 슬픈 마음도 어느 구석으로 치워져 버리지만.


최근 우리 부모님이 이사를 했다. 나의 입장에서 묘사하자면, 내가 14살 때부터 19살 때까지 살았던 집은 더이상 내 본가가 아니게 되었다.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에 대해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그곳에 살았던 시간이 5년, 그곳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온 시간이 9년이니 그 집과의 인연은 제법 흐려졌을텐데도 왠지 마음 속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이삿짐을 다 들어내고 휑한 집을 둘러보는 심정처럼. 아빠가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짐을 다 내놓고 마지막으로 빈집을 살펴보니, 집이 왜 이렇게 못나보이던지 마음이 슬퍼졌다고. 나는 아빠가 그렇게 감성적인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 더 묘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그 집을 좋아했다. 어릴 적 살았던 집 중에 그 집이 제일 좋았다. 가장 깨끗하고 넓고,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이사가기 전부터 그 집에 들어가는 날만을 고대했다.


그 집 직전에 살던 곳, 내가 9살부터 13살까지 살았던 곳은 외풍이 너무 심해서 겨울이면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집이었다. 현관문 보안도 허술해서 도둑이 1번 들었고, 수상한 아저씨가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온 적도 있다. 그 열악한 환경이 그 당시 나의 좋지 않던 마음 상태와도 맞물려 나는 빨리 이사가 가고 싶었다. 13살 때 내가 쓴 일기장을 열어보면 “이사갈 집이 너무 기대된다. 그 집에서는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적혀 있다. 그 무렵 나는 가족들과 외출해서 다른 가족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멀쩡하게 생긴 집’으로 돌아가겠지, 싶어 부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멀쩡하게 생긴 집’은 아파트였다. 나는 아파트에 대해 대단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파트는 깔끔하고 안전하고 넓어서 좋을 것 같았다.


그 집은 내 기대를 충족했다. ‘넓다’는 부분은 사실 충족하지 못했지만, 그정도로도 나는 만족했다. 누가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올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냉난방을 적당히 해도 집안 온도가 유지되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 집에 살면서 우리 가족의 형편이 점점 안정된 것도 한몫했다. 그때 나는 이따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서서 어릴 적 읽었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나온 장면을 떠올렸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 가난한 달동네에 살던 인물은 그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다른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고, 그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다시는 그 구질구질한 동네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나도 거의 그런 마음으로 이 집에 오기를 기대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 집에서 5년을, 부모님은 그 집에서 15년을 살았다. 살다 보니 그 집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교통이 너무나도 불편하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바로 근처에 공장들이 있어 공기 질이 아주 안 좋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바깥 공기에서 기분나쁜 냄새가 느껴졌다. 그때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빨리 돈 모아서 이사 가자!”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이사를 가진 못했다. 아마 나라는 사람을 밥벌이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겨우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번에는 부모님과 이사를 함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제 더는 그 집에 갈 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집에서 했던 생각, 꿨던 꿈, 만들었던 요리, 나눴던 얘기가 마치 어제 일 같아서, 그런데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확실한 과거라서 기분이 이상하다.


그 집을 떠올리면, 14살부터 19살까지의 내 얼굴이 그려진다. 빨리 집을 떠나서 더 많은 걸 누리고 싶던 아이. 그 아이를 그 집에 두고 나온 것 같다. 이제는 나와 부모님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그 아이의 집. 이젠 안녕,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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