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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May 27. 2024

짜고 구르는 세계


작년부터 팔뚝과 얼굴 위로 옅은 주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로 피부가 아픈 나에게 피부 위에 생기는 이벤트 하나쯤 큰일이 아니지만, 이건 누가 봐도 질환이 아닌 노화의 영역이다. 퇴적층처럼 좁은 간격으로 늘어선 선들이 내가 소비한 시간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주름을 따라가다 보면 40을 넘어선 50, 60의 삶이 실재한다는 걸 믿을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60은 누군가의 이름을 빌린 소설 같았는데, 이제는 예정된 미래, 다가올 수순으로 여겨진다. 숫자가 발 밑에 붙어있고, 등 뒤를 돌아보면 사람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인다. 지금보다 작은 나는 지금보다 많은 슬픔과 기쁨을 품고 있다. 노화로 인해 기능적으로 열등한 삶을 살 거라는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지만, 60 이후의 삶에서 현재보다 나아진 기능을 상상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예전보다 아프지 않은 게 사실이면서도, 언제든 아플 순간에 대기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주름이 만개하는 동안, 60이 현실이 되는 동안, 생각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가을과 겨울이 갔다. 봄이 한창 피었다가 그마저도 졌다.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초입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축축한 아침에 만난 친구는 "지금의 내가 잎새였으면 글을 더 쓰지 않았을까. 이 감정을 잘 엮어서 책으로 정리하지 않았을까."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내가 잎새였으면 책 같은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로도 글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은 그냥 거기에 놔둬도 된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글로 옮기지 않는 게 개인의 최선일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뱉을 수 없는 말과 글에 핑계를 쥐어주고 싶었다.


어제 읽은 하미나의 칼럼은 고사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사리잎 전체 모양은 잎사귀 하나하나의 모양과 매우 유사하고, 큰 잎에서 작은 잎사귀로 갈수록 같은 모양이 반복된다. 고사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속도대로 자기 모습을 갖춰간다.‘ 프랙털 구조의 잎을 스스로 디자인하지 않았는데도, 고사리는 아름답고 완전하게 자라난다.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그렇다. 고사리처럼 쓰고 싶다는 작가가 말했다. '시기마다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그 시기를 지나면 되돌아가 같은 글을 쓸 수 없으므로 글쓰기의 매 시기를 존중할 필요를 느낀다.'


얼마 전 꿈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왔다.


"짠맛을 정확한 수치로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각 사람마다 '짜다'고 느끼는 기준이 다르죠. 그렇지만 짠맛을 묘사할 수는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수준의 짠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감각이 어느 지점을 말하는지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말은 "여기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는" 하고 이어졌다가, 화자도 청자도 특정되지 않은 채 끝났다. "이 이야기가 어떤 짠맛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묘사할 수는 있죠."


시기를 놓치면 되돌아가 같은 글을 쓸 수 없으므로 글쓰기의 매 시기를 존중해야 하지만, 생각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시기와 감정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순간은 명백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시기를 존중해야 한다면, 짠맛을 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묘사할 수는 있다.


요즘의 짠맛은 아침과 밤의 요가, 독립적인 시간, 혀 끝에서 또르르 구르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누구보다 사람을 궁금해하는 동시에 누구도 궁금하지 않아서, 이건 사실상 모두를 사랑하는 동시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비가 계속 오는 축축한 여름의 입구를 지나 바삭한 바람에서 청량함을 느낀다. '육체는 정말 소중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야. 또한 아무것도 아닌 걸 매번 귀히 여기렴.' 아무것도 아닌 몸과 아무것도 아닌 시기, 아무것도 아닌 마음을 손에 들고 끙끙 대며. 스스로 디자인하지 않았지만 내 몸에 담긴 것의 형식과 구조를 궁금해하고.


친구를 붙잡고 엉엉 울어봤더니 돌멩이 하나가 녹았다.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경계가 흐릿하게 풀어졌다. 출근과 퇴근의 틈새를 빼곡히 채우는 것으로 내 주의를 가로챈다. 전체를 들여다보지 않도록, 궁금해하지 않도록, 섣불리 결단하지 않도록, 웅크린다. 혀 끝에 말은 또르르 구르고, 소금 결정은 녹아내린다. 짠맛이 퍼진다.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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