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에 다니던 h가 사랑에 빠진 눈으로 말했다. “한강이라는 교수님이 있어. 그 사람 너무… 자기가 쓰는 글처럼 아름답고 정말 사슴 같아.”
사슴 같이 말하고 사슴처럼 움직이고 사슴처럼 쓰는 사람 때문에 h는 살짝 넋이 나가있었고, 20살의 인간은 사랑이 어디에서 기인했든 쉽게 전염되는지라 나는 본 적도 없는 사슴 사람에게 덩달아 마음을 뺏겨버렸다.
구전으로 전해 들은 사슴 사람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후쿠오카 작은 자취방에서 인생이라는 소포를 처음 풀어보며 잔뜩 흥분해 있었다.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여자였고, 매일이 정전기 같은 자극이었고, 모국어로 쓰인 모든 글자가 꿀보다 달았다. 타국의 차디찬 목조주택에서 그녀의 책을 핥듯이 탐하며 그 책 속 여자들과 나를 비추어 보았다. 여자들은 문득 슬프지만, 여자들은 강하고, 여자들은 보드랍고, 여자들은 살아냈다.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가 써낸 광주 이야기를 읽은 곳은 두바이 공항에서다. 책을 펼치면 그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 공항을 잊고 두바이를 잊고 광주에서 살았다. 책 속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이 맺힌 채 고개를 들면 주변이 온통 낯선 공항이라 놀랐다. 붙드는 대로 끌고 가는 대로 자박자박 펼쳐주는 세계를 따라가다가, 밝은 곳으로 빛이 비치는 곳으로 소년과 함께 걸어갔다. 두바이에서의 나는 대체로 괴롭고, 사는 게 재미없었는데, 공항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며칠은 책 밖의 세상이 책에게 진 통렬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여성과 시대와 잊혀진 이름에 대해 피보다 더 진심으로, 신형철의 표현대로 ‘매번 사력을 다해’ 써가던 한강이 이 상을 받아 기쁘다. 오래된 독자의 삶마저 이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