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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Jan 23. 2022

어느 토요일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놀고먹었던 백수의 하루를 오늘 그대로 재연한 듯, 아닌가, 평일 내내 일을 했기에 그리 잘 수 있었을까.


 늘 주말 아침의 시작은 거실의 인기척 혹은 방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오는 가족 구성원에 의해서다.

평일보단 꽤 잤기에, 나쁘지 않은 컨디션에 함께 일어나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


 머리 염색하러 미용실도 가족들과 함께 가주면, 요즘 사색할 시간이 없어 그런지 미용실에 앉아있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것만 봐도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단편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미용실 할머니들'의 작품이 떠오른다.


  그래, 마치 그 단편 같은 걸?


 미용실이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 사람들이 머리를 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지. 노년의 할머니들, 미용실, 대화, 삶. 그것이 과연 우리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것이었다. 그저 우리의 인생은 다 결국 엇비슷한 것을.


 내 뿌리에 염색약이 발리는 걸 대놓고 의자를 돌려 구경하던 노년의 여성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은 머리를 하러 가는 곳이기도 했지만 말 상대가 필요한 이들이 한 번 들리고 가는 경유지 같았다. 미용실에 도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묻지 않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술술 꺼내곤 한다. 미용사인 외숙모의 미용실도 그런 경유지 중 하나여서 종종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듣기도 했다.


 그녀도 그것이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가운을 걸친 후 원장님께 말을 꺼낼 때마다 손님-나-의 머리를 하느라 단절되고 마는 대화에 입이 꾹 닫힌 것 같았다. 이내 나를 의식하지 않고 바라보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지만 나를 보는 것인지, 내 머리를 하고 있는 원장님과 말을 하고 싶은데 그가 시선을 주지 않아서인지가 궁금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정확히 내 머리를 보고 있었다. 더 불분명해졌다. 원장님에 대한 갈증인가. 하지만 내가 신경 쓰인다는 티를 냈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녀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내 머리도 곧 끝이 났다. 아마 내가 빠르게 떠났으니 그녀는 머리가 만져지는 동안 잠겨있던 입을 열 것이랴.


 커피를 하나씩 들고 엄마와 동생과 공원을 산책하며 느끼는 여유도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간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말 내내 차마 나갈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슬리퍼를 신고 터벅이며 보다 포근한 날씨와 햇볕을 느낀다.


 이런 것이 당연하던 때가 불과 반년 전이었는데 일하는 반년 간 당연했던 것들을 일하면서 시도하기엔 참으로 나약한 정신력과 몸뚱이구나 싶곤 했다. 실제로 반년 간 제일 많이 한 생각은 그였다. 다들 어떻게 사는 거야? 체력이 100이야?

 하지만 최근 한의원에서 맥도 약하고 기허증이라고 한 걸 보니 그저 선천적으로 기력이 약한 거라 위안해본다. 아니지, 운동을 해보겠다. 물론 퇴사 후에.


 오전에 미루던 강의까지 듣고 나니 할 수 있는 건 오전에 다 했다는 듯 뇌가 몸을 침대에 편히 눕힌다. 몸의 피로가 수평적으로 퍼지며 온 몸을 고르게 뒤덮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곤히 잠들었다. 얼핏 얼핏 들려오는 소리가 들려도, 언니 자? 물음이 들려도 눈을 뜨지도 몸을 까딱하지도 못한다. 피곤인지 무기력인지, 평일 간의 노동에 대한 보상인지 눈을 뜨려 하진 않는다. 하지만 막상 저녁에 눈을 뜨고 나면 이렇게까지 잘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 대체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거야?


 이런 긴 지극히 사사로운 하루를 늘어놓은 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작가가 마지막에 담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길 바란다'라는 말을 읽고 서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마지막 부분을 읽는 내내 울먹였다.

오히려 지난번엔 아무렇지 않게 반을 금방 읽곤 했다.

조금씩, 술술 읽히는 혹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 천천히 곱씹느라 여러 번 읽고 마는 후반부는 사람이 왜 책을 읽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유의 세계가 넓어진달까.


 대학 교양에서 영화로 보는 역사 수업이었나, 영화도 보고 싶고 나름 역사에 관심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영화나 역사 주제도 있어서 들었는데 제주 4.3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다. 제주 방언들이라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몰랐다. 흑백이었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지극히 실사적인 것이어서 보이는 모습은 충격적이고 전쟁의 모습인데도 집중을 잃게끔 했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다시 교수님이 올려주신 영화를 보니 그를 하나하나 넘길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좀 읽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잘 모르던 게 제주 4.3 사건이었다. 최근에야 정부가 4.3 사건을 추모해주며 한 번이라도 듣게 되었다만. 세상엔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관심 갖지 않으면 아무리 유명해도 모르는 일도 많다. 관심 가져도 죽을 때까지 그에 대한 모든 정보와 내용을 보지 못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채로 죽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작은 나라에서 이념과 사고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끊임없이 싸운다.


 발전의 과도기라고 누군가는 위안하고,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그저 과도기에 놓인 것이며 우린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또래의 입에서 여전히 빨갱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부모의 세대가 혹은 조부모의 세대가 하던 말들이 고착화돼 우리의 입에서도 나올 때면 얼마나 싸워야 하고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아찔하곤 하다.


 이미 교육의 시기가 지난 세대에겐 답이 책뿐인데 어리석게도 우린 가장 가까이할 것들을 멀리하곤 한다. 나 역시도 읽으면 감정이입에 에너지를 뺏겨 문학을 읽기 힘들다고 찡찡거린다. 읽으면 미쳤다며 여운에 잠기고 다른 책을 또 사고 말면서.


 책 후반부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읽으며

와인 반 병을 마셨더니 감정이 차올랐다.


 그저 총 만들지 않았지 현재 사람들이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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