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과 손맛의 차이
머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전엔 아무데서나 머리만 대고 잤던 주제에 조건들이 붙기 시작했다.
아, 여기 청결하지 못한데.
이게 가족에게까지 향하면 답이 없기 시작한다. 밥을 먹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인데. 할머니와 있을 때면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이 그 위생이었다.
할머니는 깔끔하긴 한데, 위생적이진 못하다. 이게 참 아이러니해서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 싶어 한다.
손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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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제발 손으로 하지 마~”
음식을 할 때 손으로 무치지 그럼 뭐로 하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단, 모든 식재료가 손을 거쳐 냄비든 팬이든 향한다면 1차적 메스꺼움이 시작된다. 아니야, 차라리 익으니까 나아. 하지만 그를 꺼낼 땐 적어도 도구를 이용할 수 있는데도 아 뜨거워! 하며 손을 입에 댄다. 윽, 스러울 수 있지만 할머니의 나이가 86세인 걸 감안해야 한다. 할머니 세대엔 그게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내겐 그렇지 않아 할머니가 음식을 해줄 때면 저절로 입맛이 줄고는 한다.
그러나 이 손맛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은,
엄마가 할머니가 해준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을 때였다.
엄마는 할머니와 반대로 청소는 잘하지 않지만 위생은 매우 챙겼는데 할머니의 손 맛은 그대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한 설거지를 믿지 못해 내가 먹을 식기는 또 한 번 닦고 먹어야 속이 편한 나는 그 모습에 부모 지간은 뭘까, 를 생각하게끔 한다.
할머니가 김치를 손으로 찢을 때는 믿지 못하는 것이 엄마가 찢어줄 땐 손 닦고 찢어주는 거니까 넘기게 되는 것과 같은 걸까?
내가 너무 할머니를 믿지 못해서 그러는 걸까?
하지만 그러기엔 엄마가 손을 쓸 때와 할머니가 손을 쓸 때는 전후 차이가 너무 커서,라고 또 고개를 저어 납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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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과를 먹는데 이상하게 어디선가 음식물 냄새가 났다. 주변에서 나는 건지 사과에서 나는 건지 모르겠는데 한 입을 베어 먹을 때마다 냄새가 역했다. 예쁘게 잘린 사과를 집어 다 냄새를 맡아보니 모두에서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지금 나만 이 냄새를 맡는 건가? 하고 엄마와 할머니를 보면 아무렇지 않게 잘 먹고 있다. 또, 나만 이상한 건가. 하고 사과 먹기를 거부하면 할머니는 옆에서 또 아쉬움에 투덜거리신다.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는다고 하냐, 자꾸. 이상해~ 맛있기만 하고만”
“아냐.. 안 먹을래. 배불러.”
할머니가 주는 음식을 거절하는 모든 방법은 배부르다 다. 그러면서 왜 살찌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할 말은 없다. 누워있으니까 그렇지.
시간이 좀 지나고서야 엄마가 말해준 건데 과도로 이것저것 썰어서 그런 거라는데 그제야 사과의 맛이 이해가 가는 동시에.. 다른 음식을 못 믿게 됐다. 설거지를 안 했다던가 잘 안 됐단 소리잖아? 그러나 다들 너무 잘 먹어서 나만 이 맛있는 걸 먹지 않는 이상한 애가 되곤 한다.
가족이 중요한 집에서 자라다보면 이상한 애가 되는 건 아주 한 순간이다. 나는 줄곧 이상한 애로 커왔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 대신에 할아버지와 동생과 제주도에 가라는 얘기도 들었다. 엄마에게. 그를 내가 거절했을 때, 이상하단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내가 뭐라 그랬더라. 우물쭈물하다가 짜증 나서 “엄마가 할 걸 나한테 넘기지 마”라고 했나. 그 말에 넌 피해의식에 생각이 이상하다고 했지. 아, 이 얘긴 딴 소리다. 그저 이 집에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너무 당연했단 얘길 하다 보니 오래전에 묻어 놓은 말이 번뜩 떠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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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거나 손이 닿는 나물류나 김치류는 먹지 않고 익힌 것 위주로 먹고 있는데 산책만 규칙적으로 하면 할머니네서 완벽한 다이어트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완벽한 다이어트의 비결은 입맛이죠. 동생과 스우파의 해치지 않아 프로그램을 보며 고기 구워 먹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자 괜히 군침만 삼켜댔다. 가장 효과가 직빵인 동생을 툭 치고, 고갯짓을 했다. 고기 먹고 싶다고 말하고 와. 이땐 이틀째, 할머니의 ‘좋음’ 정도가 좋을 때다. 내일까지 지켜봐야 이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알 수 있지만 적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좋을 테니. 그러니 사회성이 좋아진 동생이 할머니한테 사랑스럽게 “할머니 나 고기 먹고 싶어! 돼지고기!” 달려가 말하니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자기 전까지 계속 먹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니 자린고비처럼 귤만 계속 뜯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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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면 관찰력과 감각들이 모두 곤두서는데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좋은 건, 깨달음을 얻는다?
동생은 분명 예민한 성격으로 잠자리가 바뀌거나 밤에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짜증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새로운 환경과 장소에 곧잘 적응해 아무렇지 않게 놀곤 한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것만. 9살 동생과 반대인 28세의 나는, 물리적인 환경이 바뀌니 알레르기나 나고. 적응하느라 지쳐 매번 잠에 자기 일수였다. 할 것들을 가득 챙겨갔는데 하지 못하는 것은 친구와 대화한 끝에 얻은 합리화에 의하면 ‘나는 내 공간이 아주 중요하다’였다. 아무나 침범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내가 구축해 놓은 공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덕분에 모든 게 오픈형이고 ‘나의 것’이란 개념이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기에 의지가 1도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카페에 나와 글을 쓰며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