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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ea Jul 25. 2021

엄마는 별나라로 무얼 타고 갔을까?

첫 번째. 엄마의 죽음


지난 5월 

엄마가 죽었다.


지난 5월은 10년 전도 5년 전도 1년 전도 아닌

 정말 두 달 전인 바로 지난 5월을 말한다.


첫 글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에 대해 참 유감이다.


 엄마가 죽기 바로 전 주 , 어버이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모이지 않았다.

 애당초에 우리 가족은 그러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열두 살 적에 이혼하신 후 지금까지 따로 사셨고 우리 가족의 뿔뿔이 흩어져있음은 특별히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겐 익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따라 엄마는 우울하다고 했다. 

어버이날 우린 다른 가족들처럼 모이지도 못하고 너무 우울하고 속상하다고 그러셨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왜냐하면 살면서 나도 그렇게 느낀 적이 많았으니까


나는 오랜만에 친구를 보러 천안으로 가있는 상태였고, 친구와 저녁을 먹는 와중에 엄마의 카톡을 보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사실 잘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엄마의 문자는 몹시 격앙되어 있었고,  감정적이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 내가 없는 게 편안한 거라면.. "


그리고는 우리 삼 남매 이름을 부르며, 지금껏 버티게 해 줘서 고맙다고 엄마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또 왜 그래. 엄마 술 마셨어?" 


나는 화가 났다. 

정말이지 나는 화가 났다.


우리 엄마는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예쁜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 특유의 어리숙함은 정말이지 순수라는 단어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반딧불이의 노란 엉덩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일 만큼이나 순수했다. 엄마의 순수는 억지가 아니었다. 그 웃음 속에서 엄마 본연의 순수가 베어 나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엄마의 '순수함'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순수를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한 것과,  사람들이 그런 그녀의 순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가 마음 아파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순수함'과 별개인 '순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순수함을 알고, 믿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자신을 탓하는 말을 할 때면 나는 아니라고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설령 모두가 들었을 때 철없는 소리 일지언정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 엄마가 술에 취해 또 그런 말들을 쏟아내니 나는 감당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은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극단적인 말까지 늘어놓으니 딸로서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졌다. 


그 순간에 나는 엄마에게 따듯하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 마음 아파했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걱정했다. 나의 말투는 차가웠으나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아픔으로 달아올라있었다.

내가 잠자리에 누울 때쯤 엄마의 마지막 카톡이 울렸다.


"솔직히 내가 못나도 살아있는 게 너희에게 도움 될 거라 생각했어.. 이젠 너희도 다 컸고 나의 존재는 차라리 없는 게.. 이젠 너무 아프다 지친다"


처음 저 카톡을 받았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무슨 소리냐며, 그래서 죽겠다는 거냐고 말했다. 곧이어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과 같은 마음으로 "엄마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라고 카톡을 보냈다. 사실 그 말을 하면서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보냈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난 엄마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믿었다. 아니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으며, 나를 두고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다. 괜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늘 그렇듯 가끔 우울에 빠진 엄마가 하는 실없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싶었고 그렇게 잠들었다.

잠에 들기 직전까지 마음이 너무 아프고 화가 났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 




엄마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어쩌면, 정말 0.1%라도 엄마가 정말이라도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조금은 들어 적어 보낸 나의 문자들은 내가 살면서 했던 어떤 말보다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픈 말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만에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못 죽을 테니까


엄마에게 말 차갑게 해서 미안하다고 우리 남매들 모두가 엄마 걱정을 한다고 말한 후 답이 없는 엄마를 뒤로한 채 한참을 뒤척이다 나는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의 비보를 전하는 전화를 받고 나는 꿈보다 더 깊은 곳에서 깨어났다.


엄마는 그렇게 갔다.

나를 깊은 고통의 구렁텅이로 던져버리고 엄마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도 모르게 갔더랬다.






"…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는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 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반 고흐의 편지 중에서-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고흐의 말처럼 각종 질병이 천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엄마는 별까지 무얼 타고 갔을까?

다리가 많이 아파서 별까지 걸어갈 힘이 없었던 걸까

나의 엄마는 별나라까지 어떻게 갔을까 

엄마의 옆에서 같이 걸어가 주고 싶었는데

그녀는 지금쯤 별에 도착했을까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는 있겠지 

내가 별에 가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오늘밤 올려다 본 별빛은 저리도 따스한데, 지금 내 생각엔 별이 한없이 차가울 것만 같다.
그래도 별은 따듯하겠지 
그래도 별은 따듯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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