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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종규 Feb 15. 2023

[3]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도시

순환경제와 도시

2020년에 Grame MacKay가 공유한 만평은 그 해 여러 환경 콘퍼런스에 인용되며 인류에게 큰  위기가 올 것이며, 코로나19는 이제 겨우 시작일 따름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듣다 보면 인류는 매우 복잡한 문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다. 복잡한 문제에 단순한 해결책은 없다. 꼬인 실을 풀어내듯 하나씩 풀어가야 하는 마음이 먼저 들겠지만, 어떤 매듭을 먼저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유기체로 얽힌 사회의 문제를 푸는 데 쓸만한 해결공식은 없는 것일까?

EMF의 순환 경제 이론을 정립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담당한 영국의 경제학 교수 Ken Webster는 순환경제에 필요한 여러 접근법을 하나씩 설명한 후에 샌드위치 사진을 꺼낸다. 경제를 보는 새로운 관점, 혁명적인 기술, 정부의 규제 등 다양한 요소에 빠짐없이 순환 경제의 원칙을 적용하고, 한 입에 먹어야 그 맛이 난다는 설명이다.

환경부의 권고에 따라 한국의 대형 슈퍼마켓 브랜드는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하겠다는 선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2003부터는 일회용품을 줄이겠다며 분식 코너에서 나무젓가락을 없앴다. 그리고 김밥 같은 분식류 포장판매에 쓰이는 받침포장을 종이나 생분해성으로 환경표지를 받은 PLA플라스틱으로 변경했다. 그렇지만, 받침을 제외한 뚜껑에 쓰이는 비닐포장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쓰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을 대체할 기술이 없거나 알맞은 다회용기 솔루션이 없는데 규제만 만든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날 리 없기에 놀랍지도 않은 현상이다.


슈퍼마켓으로 화두를 꺼낸 것은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전 세계 3분의 2가 모여사는 도시에서는 전 세계 폐기물량의 50%가 생기고, 75%의 천연자원을 소비한다. 슈퍼마켓처럼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생기는 문제부터 잘 풀어낸다면, 효과가 큰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도시의 변화에 주목한다.

Leyla Acaroglu의 연결된 시스템 도식                                                     Kate Raworth의 도넛경제 모델

Kate Raworth의 도넛경제학에서도, Leyla Acaroglu의 시스템 도식에서도 사회와 산업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듯이 순환경제를 이야기할 때 도시와 도시 정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겠다.


도시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순환 경제 3원칙을 떠올려 본다. (1) 애초에 폐기와 오염을 만들지 않는 설계/디자인, (2) 제품 수명이 다할 때까지 최대한 사용, (3) 자연을 재생.


재생에너지로 도시를 움직이고, 도시 농업을 하고, 건물과 운송수단을 공유하고, 상품의 수선을 도시민이 서로 돕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하수 오염을 막아 도시의 공기와 물을 재생하는 방법 등 다양한 도전이 전 세계에서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암스테르담 같이 여러 면에서 앞서 실천하는 도시도 있고 재생농업의 모델로 떠오르는 일본의 작은 도시도 있다.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 단위로 보거나, 인근 도시 간에 서로 돕는 유기체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런던 Advance London (2017-2019) 

런던 시 정부는 6명의 전문직원을 고용해서 도시 내 중소기업 간의 협업과 금융, 디자인 씽킹 등의 컨설팅을 지원했다. 컵 공유 솔루션 CupClub, 향수병 리필 4160 Tuesdays, 균사체 기반 건축자재 Biohm, 버려지는 깃털로 만든 내열 포장 Pluumo, 남는 음식을 공유하는 OLIO 등 100여 개 스타트업이 시 정부의 컨설팅을 받았다. 런던 순환경제 로드맵에서 확인된 건축, 식품, 섬유, 전기, 플라스틱 총 5가지 중점 영역에서 활동하는 중소기업이 순환 경제의 원칙을 배우고, 도시의 가치상승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정부의 활동 사례이다.


뉴욕 WearNext (2019) 

패션의 도시 뉴욕에는 이미 안 입는 옷을 버리는 방법은 많았지만, 효율적인 순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 정부에서는 천 여 개의 의류 수거 지점을 반응형 온라인 지도에 표시하고, 각개 흩어져서 활동하던 재활용 업체들이 한데 모여서 자원을 공유하게 했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부하는 옷에 얽힌 이야기를 공유하는 캠페인을 통해 옷장 안에 있는 의류와 섬유 소재를 모았다. 인플루언서들이 앞장서 유행으로 만들고 동시에 Gap, H&M, Zara 같은 의류브랜드의 참여도 이끌어내었다. 많은 인구가 모인 도시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도시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상파울루 Connecting the dots 

주정부 지역 내에 유기농 혹은 재생 농법으로 작물을 생산하는 농가를 지원하고, 주정부는 시장 가격보다 30% 더 비싼 가격에 해당 농산물을 구입하여 소외계층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 토양을 건강하게 하며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동시에 합성비료와 살충제의 의존도를 줄이는 순환 경제 원칙에 걸맞은 사례이다. 농업이 산업의 기반인 지역에서 지역의 토양자원을 오래 잘 활용하려는 도시의 움직임이다.


위 세 사례가 도시정부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라면, 기업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펼친 순환 경제 사례도 있다.


싱가포르 Kaer 

건물에 냉각 공조장비를 공급하던 Kaer는 에어컨을 잘 팔면 팔수록 도시는 더 더워지는 아이러니를 깨닫고 건물의 공기를 통째로 관리하는 구독 서비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했다. 건물의 온도와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최적의 공조 시스템을 컨설팅하고 관리하는 솔루션을 판매하면서 시원한 온도는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전력과 환경부하를 줄이고 있다. 도시 정부가 에어컨의 온도를 강제하기는 어렵더라도 건물의 냉각공조 요건 규정을 만든다면 어떨까? 건물로 가득한 도시의 여름 거리를 가로수에만 의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구와 시설이 집약된 도시에는 학교가 많고, 기업이 많다. 그리고 정치가 있다. 혁신의 씨앗과 터전이 있는 곳에서 지방정부의 리더십을 통해 순환 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한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가 터진 후,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하며 겪어냈다. 경제불황은 이미 왔고 앞으로 기후 위기, 생물다양성의 붕괴 역시 어떻게든 겪어낼 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빨리 인정하고, 위기를 겪어 낼 준비를 하겠다는 마음다짐을 했다면, 어느 매듭부터 풀어야 할까? 도시는 순환경제 전략을 세워 효과를 낼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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