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눈빛

나는 지금 고요를 배우고 있다

by 지은담
심연을 꿰뚫는 눈빛, 나를 깨우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불현듯 마당에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닭들이 혼비백산해 푸드덕대는 소리.

날카로운 비명이 마당을 찢듯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놀라 번쩍 몸을 일으켰다.


급히 창가로 달려가니,

창문 너머 나뭇가지에

참매 한 마리가 사뿐히 날아와 앉았다.

매서운 눈빛이 곧장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압도되어

나는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눈빛을 마주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심연을 꿰뚫는 눈빛,

그 강렬함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곧 장면이 바뀌었다.

학교 운동장. 그리고 달리기 시합.

출발 신호가 울리자,

나는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의 기억은 끝이 났다.


나는 지금 고요를 배우고 있다

그 시절 나는 무기력과 불안 속에 갇혀 있었다.
병약한 아이들과 나를 구속하는 가정적 환경,
십수 년간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정체의 시간.
우울증은 깊어만 갔고,
미래에 대한 기대는 점점 사라져 갔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공부를 붙잡았다.
심리학을 배우고, 자연의 법을 익히며
말라죽어가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내 영혼에 지식을 수혈하듯 쏟아붓고 있었다.

비로소 숨이 트이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 꿈은 단순한 불안의 반영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어렴풋이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닭들이 놀라 달아나는 소리는

나도 모른 채 정체되어 있던 일상과 습관이

깨지기 시작할 때의 울림이었다.

어쩌면 매의 눈빛은 미지의 영역에서 온 고차원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그것이 나를 흔들고 깨웠다는 것이다.

그 순간의 공포는 부정적 의미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내면이 투시되고 있다는 압도감,

그 위대한 힘 앞에 선 어린 영혼의 떨림이었다.

하나의 세계가 끝날 무렵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기회가 온다.

천지가 개벽할 만큼 큰 흔들림도 마땅히 그 과정에 함께한다.

아마 그 매는 이를 알려주는 전령이었으리라.

“너 자신을 찾을 준비가 되었는가,

변화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삶의 프로그램 속에 갇혀 헤매던 나의 영혼을

천지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로 깨워준 하나의 꿈.

그리고 얼마 뒤,

또 다른 꿈이 의식의 흐름을 타고 찾아왔다.

저 멀리서 스승이 여러 인영들과 함께

시간의 속도를 초월하듯 다가오셨다.
아무 말씀 없이 미소 지으시며 곧장
내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추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선 채
두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벌써 10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눈빛과 그 입맞춤을 기억한다.

닭은 요란하게 울었다. 하지만 매는 한없이 고요했다.

나는 아직 소란스러운 닭인가, 매의 고요를 닮아가고 있는 중인가.

아직도 달리고 있는 중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직 고요에 닿지는 못했지만,

소란을 떨어내고자 침묵을 배우는 중이다.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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