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선열 Oct 25. 2024

나이 들면 추억으로 살지만 추억 속에 살지는 말자

추억은 아름다워


하루 기록

'나이 들면 추억에 산다'더니 옛말 그르지 않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추억으로 연결되고 만다 냉장고 문을 왜 열었는지 금방 한일은 까맣게 잊고 마는데 지난 일들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봄 철이면 알레르기 결막염이 생겨  하루 세 번 오 분 간격으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데  용케 안약 넣는 걸 잊지 않았다 해도 처음 한 번을 넣고는 다음 약을 넣을 때까지 오분 기다리는 동안 까맣게 잊고 만다. 약 표면에 순서를 적어 놓고 손 닿는 곳에 두건만 번번이 두 번째 약 넣는 것을 잊게 된다. 왼쪽 오른쪽에 각자 놓인 약병을 보고"아차!" 하며 다시 왼쪽이 눈에 넣은 약병인지 안 넣은 약병인지 난감해진다. 오른쪽은 사용하기 전 왼쪽은 사용 후 두 개 다 넣었을 때는 약상자에 보관, 이렇게 정해 놓고도 번번이 잊어버리고 마는데 안약을 넣을 때마다 어린 시절 눈 다래끼를 앓던 일, 노안 판정을 받았을 때의 당혹감 같은 것들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벌써 30여 년 전 이야기건만 "노안입니다" 무심히 말하던 의사의 진단이 메아리쳐 들리는 듯하다. 공식적으로 노화 판정을 받은 첫 번째 일이니 충격이 컷을 법은 하다.


이제 웬만한 일들은 모두 노화로 귀결된다. 건망증과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 전혀 상반된 현상이건만 원인은 똑같이 노화라 한다.  처음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나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

때로 젊음의 혈기와 치열함이 부럽기는 하지만 의무와 책임에서 놓여난 편안함도 있다. 시기와 질투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된다.

추억이긴 하지만 경험에서 쌓인 지혜랄까 노하우는 젊은 시절의 오기나 무모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고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인 여건도 있고 주어진 환경의 테두리는 있지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혜안도 있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볼 때에는 무기력하고  비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다스리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변명해 본다


이렇게 생생한 추억들은 경험에서 우러난 것들이니 때로는 겉 넘을 때도 있다. "나 때는 말이야'-" 하는 꼰대 짓을 하고 싶어 진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풀어야 한다는데 풀 수 있는 주머니가 없으니 입이라도 꾹  닫아야 하는데 불쑥불쑥  '너 늙어 봤니? 나 젊어 봤다" 하며 추억 소환을 하게 된다.  변화가 빠른 세상이니 어제 일도 별무소용인데 추억 속으로 회귀하고 만다.

그건 아마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은 추억에 잠기기는 할망정 곧바로 헤쳐 나올 수 있지만  얼마 안 가 추억 속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아직은 수족과 정신을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9988234를 부르짖는 이유이다. 굳이 99세까지가 아니더라도 사는 동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다. 정신도 육체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살아가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 스스로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노후의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지금은 추억을  아름답게 떠 올릴 수 있는 시절이지만 세월이 조금 지나면  추억 속에서 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대안이 있기를 바란다. 의학이 날로 발전하고 있으니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쓸데없는 걱정이 될 수도 있겠다.


아직도 눈을 뜨면 친정이 생각나는데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열흘 전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건강하게 지내셨다. 요양보호사를 부르자고 간곡히 부탁드려도 아직은  남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자리에 누우신지 딱 열흘 만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나는 아직 동요를 부르시던 고운 어머님의 추억으로 살고 있다. 다래끼 난 나를 데리고 황망하게 병원에 가시던 모습, 자주 재발하는 다래끼 예방책으로 발바닥에 붓글씨를 써넣어 주시던 모습들이 생생하다.  이렇게 떠올릴 추억이 있는 한 삶이 그리 강퍅하지는 않을 것도 같다. 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직면한 현실에 충실할 일이다. 때로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미래의 나를 위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젊은 시절처럼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노후의 축복이다. 나는 지금 어머님을 여읜 슬픔에 젖기보다는  어머님과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다만 추억 속에 살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너 늙어  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