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 갈채를
솜씨 맵시 마음씨, 세 가지 ‘씨’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미덕이라 한다.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솜씨와 맵씨가 좋고 마음씨 고운 여인이라면 호감이 갈 거 같긴 하다.
내심 내가 꽤 괜찮은 여자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데 이렇게 세 가지 요소를 놓고 보면 주눅이 들기는 한다. 솜씨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우연히 알게 된 사주 보는 분이
"손으로 하는 일은 하지 마세요. 밥 벌어먹기 힘듭니다“ 했었다, "그럼요? 발로 먹고사나요?" 했더니 "머리나 말로 먹고살게 됩니다" . 머리나 말도 별로 신통치 않아서 그리 잘 먹고 사는 편은 아니다.
주부 경력 40년이니, 풍월 정도는 읊을 줄 아는 살림 솜씨라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내놓고 자랑할만한 살림 솜씨는 못 된다. 청소건 설거지 건 요리 건 어느 한 가지도 똑 부러지게 잘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청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필요한 물건은 쓰기 좋게 늘어놓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한동안 읽어야 하는 책을 그때그때 책꽂이에 꽂으면 찾느라 시간 낭비이다. 책상 위에 놓는 게 합리적이다. 볼펜이나 메모지도 책상 위에 놓여 있어야 한다. 서랍 속에 넣었다 꺼내는 수고를 줄여야 한다. 유럽에서는 퇴근 시에 책상 위를 정리하지 않고 일하던 대로 늘어놓고 퇴근하고 출근해서 곧바로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퇴근하기 전에 정리하고 출근해서 업무준비를 하면 준비시간이 길어진다. 합리적이거나 능률적이지 않다.
설거지에 대해서는 불가사의하다고 말 할수 밖에 없다, 나름 조심하건만 내가 설거지를 하고 나면 그릇이 깨지거나 없어진다. 꼭 내가 깨뜨리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원인제공을 하게 되고 사라진 과도나 스푼 따위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된다. ”너는 가만 있는 게 도와 주는거야.“ 가까운 친구들 말이다.
이만하면 음식 솜씨에 대해서는 더 들을 필요가 없겠지만 못난이 비지전을 만들어 놓고 그래도 맛은 있다고 우기기도 하고, 내 못난이 전 때문에 예쁘게 빚은 사람은 더 돋보일 터이고 나처럼 솜씨 없는 사람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큰소리 친다
두 번째 맵시로 들어가 보면, 나 혼자 있을 때 거울을 보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면 "선우" 하는 대답이 거침없이 나오지만, 대중 앞에 서면 좀 달라진다.
소피아 로렌을 닮은 친구가 있다. 큼직한 이목구비에 희고 고운 피부이니 내가 보기엔 소피아 로렌을 능가하는 예쁜 얼굴이다, 나하고는 절친이라 한 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기도 했다. 그 친구와 내가 같이 등장하면 친구를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인이시네요.”라고 말하고 나를 보며 "인상이 좋으시군요"한다.
인상이 좋다는 말에 만족한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고 다녔는데 어느 날인가 좀 석연치 않은 낌새를 느끼고 물어보았다. "얘는 미인이고 나는 인상이 좋아요?" 얼굴이 벌게진 지인이 우물쩍 넘어가려 애쓰는 걸 보고 깨달았다. 내 별명이 백설 공주가 아닌 백설기 공주란 걸,
마음씨 부분은, 이 부분이 제일 할 말이 많다. 나는 착하고 싶지 않다. 좀 도도하고 쌀쌀해 보이고 녹녹지 않을 거 같았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느니, 덕이 있다느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느니, 법 없이도 살 거 같다느니, 이런 소리 들이 듣기 싫다.
친구랑 셋이 길은 걸어가면 사람들은 가운데 끼여가는 나를 찾아내어 길을 물었다. 내가 착해 보여서, 착하게 대답하느라 나는 또 정성을 다하고 착하단 칭찬을 듣고, 그때 내 소원은 말도 못 붙이게 쌀쌀해 보이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착하다.
못난이 비지 전을 만들어 놓고, 솜씨 좋은 사람들은 그들의 솜씨에 만족하고 솜씨 못 미치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 아마 나는 날개 안 달린 천사인가 보다.
그러니 여러분, 솜씨 좀 못 미쳐도, 맵시 좀 떨어져도 꼴찌라도 박수쳐 주세요, 여러분의 솜씨는, 여러분의 맵씨는 저로 인해 돋보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