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 쓰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혹은, '덮어 놓고 쓰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잘 살아보자 '라는 구호가 한참이던 70년대에 유행하던 표어들이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교육을 받다가 몰아치는 근대화 열풍에 휘말리며 황금 만능 주의가 횡행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안 먹고 안 쓰고 하루 8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는 키우는 소도 팔고, 문전옥답도 팔아야 했다. 대학이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는 탄식도 높았다. 누나들은 남동생이나 오빠들의 공부를 돕기 위해 일찍부터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누구든 한사람이 잘 살아야 집안을 일으키던 시절이다. 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가난을 면해 보기 위해 몸부림쳤다.
덕분에 전후 폐허의 가난했던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이다. 전후 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 은퇴 후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 하는 시절이 되었으니 마음 편해졌을만한데 난데없이 노후가 길어졌다. 30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문제는 소득이 없는 기간이라는 데 있다. 벌어 놓은 돈은 일정한데 살아갈 세월만 늘어난 것이다 .다시 '흥청 멍청 쓰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에 직면하고 말았다,
'팔자 도둑은 못한다더라', 엣 속담이 맞다우리 시대 사람들은 소처럼 일하고 개미처럼 허라를 졸라매야 하는 팔자인가 보다.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보자는 부모들의 노력으로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시절보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니 그만큼 누리려 한다.
단칸 셋방에서 삼대가 살아도 결혼하는 게 당연하던 우리들이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해야 결혼하고 애도 낳을 수 있다 한다. 결혼이 늦고 애도 낳지 않는다. 애를 낳아 놓고도 애는 책임지지만 결혼은 안 한다고 선언을 하는 시대이다
비교적 많은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은 우리 시대 사람들도 그리 흥청망청 쓰지는 못한다 아껴야 잘 산다가 몸과 마음에 배어 있다. 돈을 벌던 시절에도 안 먹고 안 쓰던 사람들이니 고정 수입이 없어진 노후에 벌어 놓은 돈을 곶감 꽂이 빼먹듯빼먹는 게 쉽지 않다. 여전히 허리띠 졸라매고 안 먹고 안 쓴다 자신들을 위해서는 못쓰지만 손주들을 보면 무방비로 열리는 지갑이다.
젊은이들은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씀씀이가 크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휴가도 간다.
출퇴근시간과 휴가는 철저히 지킨다. 돈이 모자라니 아이는 낳지 않는다. 현재의 삶을 즐기려 한다.
돈 있는 부모들은 휴가를 가지 않거나 민박 혹은 야외 텐트 정도의 휴가에 만족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일 년 부은 적금을 휴가에 쓰기도 한다. 호텔 휴가가 보통이고 야영도 초호화 캠핑 밴을 이용한다. 변두리 집값에 해당하는 캠핑용 차이다.
현재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현명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따라 할 수는 없다 . 절약의 습관이 몸과 마음과 머리에 박혀 있다. 젊은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현재를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사는데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자신이 설계해야 하는 삶이다. 모든 선택의 책임도 자신에게 있다
준비하지 못한 노후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다시 살아낸다 해도 허리띠 졸라매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일하던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힘들고 어려웠으나 보람 있는 일이었다.한강의 기적을 이룬 세대를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이 있다. 잘 먹고 잘 놀지는 못했지만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어 본 사람만이 짐을 벗었을 때 홀가분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가볍게 길을 걷던 사람은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경지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특히 내 가족,내 자식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못할 게 없었고 그렇게 살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젊은이들의 삶도 응원한다. 현명하고 재치 있다. 한 번뿐인 삶의 주인공이 된다. 자신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사회가 변하니 흐름에 따르는 게 순리이다.'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아닌 '황금을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나름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자신에게 감춰진 가치를 찾아나가는 일, 그것이 삶이다
내게 또한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출산과 육아의 지난한 길을 다시 선택할 것같다. 힘들었지만 상응 하는기쁨과 보람이 있었다고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