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선열 Dec 18. 2024

그 많던  웃음은 어디로 갔을까?



 낙엽 구르는 것만 보아도 웃음이 터지는 시절이 있었다.

웃게 해주는 것들이 있어 웃는 게 아니라 영문을 몰라도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 시작해서 웃으며 끝나는 하루, 그 즈음의 일상은 늘 그랬던 거 같다.

특별히 웃음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많이 웃는다는 생각도 없었다.

왜 웃었는지 이유를 몰라 실컷 웃고 나서 왜 웃었지?  하곤 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실컷 웃었지만 아직도 웃었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건 하나는

여고시절,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전체 조회가 있는 운동장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새 학년 친구들과 만나는 인사를 해야 했고

일 년간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해야 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반가움과 아쉬움과 호기심과 서운함이 교차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드디어 조회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대열을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평시처럼 일사불란한 행동은 아니었다

아쉬워서 지난해 짝꿍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새 친구를 반기느라 미처 주변을 인식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대표를 맡은 친구들이 대열을 오가며 정리하려 했지만 좀체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나오시고 담임 반 앞에 섰지만 시끄러운 웃음소리에 선생님의 목소리도 묻히고 말았다

참다못한 훈육주임 선생님이 교단에 올랐다

작지만 체격이 단단한 짧다막한 젊은 체육 선생임이셨다

평소 여학생들의 인기를 인식해 특유의 저음을 구사하곤 했고

사춘기 소녀들은 그런 선생님의 노력을 싫어하지 않았다

우리끼리는 "귀엽지 않니?" 하곤 뒤에서 겸연쩍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날은 달랐다

인기보다 규율을 잡아야 하는 선생님은 단연  엄숙했다.

지휘봉을 흔들며 교단에 선 선생님의 모습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앞에 선 몇몇은 대열을 정비하려 움직이기도 하는데 중간쯤에서 한 학생의 웃음이 터졌다

"왜?"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서로 마주친 우리들은 거의 같이 웃음을 터드렸다

웃으면서도 영문을 몰라 "왜?" 하고 묻는 친구들이 대부분 있지만

웃음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기만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허리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리고,

그런 모습이 우스워 서로를 바라보며 또 웃어야 했다


웃음소리는 학교 담장을 넘어 학교 밖으로 퍼져 나갔다

훈육주임의 지휘봉은 더 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때 교감선생님이 나셨다


교감선생님은 별명이 부르독이었다

키가 구 척이고 얼굴빛이 검으며 인상이 부르독처럼처럼 험악했고

복도에 서면 복도가 꽉 차는 큰 체격이었다


훈육주임의 지휘봉을 들고 교단에 오르신  교감선생님이 마이크 볼륨을 높이며 크게 소리쳤다

"도대체 왜 웃니? 이제 그만 웃어라"

잠시 정적이 흐르는 듯하더니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쥐고 있던 사탕을 뺏긴 아이가 악을 쓰고 우는 것 같이

웃음을 제지당한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지기만 했다


한두 번 탁지를 두드리며 웃음을 말리려던 교감선생님이 그만 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마이크에 대고 말씀하셨다

"그래 실컷 웃어라" 선생님의 목소리에도 웃음이 묻어 더 이상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는 봇물 터지듯 터지는 웃음을 감당해야 했다


결국 신학기 첫 조회는 교실에서 스피커 소리를 들으며 해야 했다

그날 이후 불도그 교감선생님의 별명은 착한 불도그가 되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뭐가 그리 우스웠을까? 하면서도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긴 한다


다만 크게 웃는 게 아니라 피식 입꼬리만 올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좀체 소리 내어 크게 웃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기쁜 일이나 좋은 일이 없어서가 아니고 낙엽  굴러가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도 아니다


사실 나는 요즘 젊은 시절 보다 더 많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뜨고 있는 듯하다

초승달은 초승달대로 예쁘고 반달이 제일 아름다운 거 같다가 만월의 풍요로움에 감탄한다

늦은 외출을 싫어 하니어두워지면  종종걸음을 치며 귀가를 서두르다 가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만다  

슬쩍 웃으며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남들이 본것을 같이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온실속의 화초보다 돌 틈새에 핀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좀체 웃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예전처럼 나는 여전히 많이 웃고 있다

더 자주 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심히 보아 넘기던 일들이 새롭게 보이니 말이다

다만 소리를 내지 않는다, 빙긋 미소로 대신한다, 웃음소리를 잊은 것 같다

소리가 없는 웃음은 오래가지 않고 전파력도 없다


웃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슬그머니 같이 웃음을 터뜨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감력이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웃음소리를 잃는다는 건 공감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혼자 피식 웃고 마는 웃음은 전파력이 없으니 말이다


전파력은 없을지 몰라도 혼자 웃는 웃음은 공허하지는 않다

왜 웃었는지 이유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의 의미를 혼자 간직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차곡차곡 마음에 쌓고 있다


이런 나이 듦이 싫지만은 않다

몸은 비록 퇴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마음이 깊어진다

젊은 시절 제어할 수 없었던 그 많은 웃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더 자주 마음 깊숙이 한켠에 쌓이고 있다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할머니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