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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푸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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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Mar 31. 2022

즐거운 나의 집

푸른 파장 #2

B는 바닥에 앉아 핸드폰 주소 목록을 살폈다.


광고 담당자

김대리

김부장님

박팀장님

양수철 세무사

지수


스크롤을 스톱시키고 지수라는 이름을 한참 바라보았다. B는 큰 결심을 한 듯 통화 버튼을 검지로 눌렀다. 신호가 가고 상대방 쪽에서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야, 나야. 잘 지내지? 이게 얼마 만인지. 한 7-8년 됐나.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고. 진짜 오랜만이다. 아, 너랑 옛날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서. 우리가 대학교 졸업할 때쯤인가. 내가 10년 뒤에 아파트 살 거라고 했더니, 네가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미쳤냐고. 아, 지금 생각하니깐 웃기네. 내가 씨발, 보여준다고. 막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그때 소주 마시고 있었나. 학교 잔디밭에서. 모르겠다 가물가물하네. 그래서 옛날 얘기했던 거 기억나냐. 내가 이사만 몇 번 다닌 지 아냐고. 초본을 떼면 주소 변경 때문에 8장인가 나온다고. 아니 얼마나 이사를 다닌 거야. 또 전입신고는 왜 이렇게 꼬박꼬박 한 거냐고. 징글징글해. 심지어 중학교 때 전학을 갔는데 몇 개월만 다닐 거라고 부모가 교복도 새로 안 해줬어. 몇 달 동안 다른 교복을 입고 다녔어. 교사들이 나를 보면 쟤는 곧 전학 가니깐 신경 쓰지 말아요. 이 지랄을 했다니깐. 전학 가서 같은 학년 애들한테 화장실 불려가고, 한 학년 선배들이 불러다가 교복 가지고 지랄하고 아주. 그때마다 부모라는 인간들은 애 둘을 데리고 매번 더 작은 집으로 옮겼어. 고1 때였나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모든 물건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는 거야. 엄마는 TV에서 빨간 압류 딱지를 떼면서 건조한 목소리로 내게 이혼 소식을 알리더라. 나 어린 시절 물건이 하나도 없잖아. 졸업앨범도 없어. 이사 갈 때마다 필요한 것만 챙겨라 했거든. 그때 내가 앨범이며 그런 걸 챙겼겠냐고. 워크맨이랑 아끼던 테이프 몇 개만 챙겼지. 집이란 게 있어야 어딘가에 물건도 남아있고 그런 건데, 알잖아. 옛날 고향집에 가면 향수 어린 물건들이 서랍 곳곳에 숨겨져 있기도 하잖아. 드라마에서 그런 거 자주 나오잖아. 그러면 옛 추억도 떠올리고, 아름답잖아. 난 그런 게 없어. 그 시절이 소실된 거야. 그 시절 친한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면, 그 얼굴이 맞나. 내가 상상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내 옷들, 내 물건들. 다 어디 있을까. 다 어딘가로 실려가 불태워졌을까, 땅속 깊이 묻혀있을까. 


나 졸업도 하기 전에 경영학과 교수님 연구실에 취업을 했잖아. 100만 원 주는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는데, 빨리 돈 벌고 싶어서 그 거지 같은 곳에 취업했지. 학교에서는 꽤나 촉망 받는 교수였는데, 자기 사소한 업무는 죄다 조교나 연구실 직원을 시키는 놈이었어. 기러기 아빠였거든, 뭐 미국 나갈 때마다 표 티켓팅이며 짐 보내는 거며. 잔심부름을 얼마나 시키는지. 그때 100만 원 받으면서 학자금 대출, 기숙사비, 고정비 제하고 30만 원인가 적금을 넣기 시작했어. 의정부에서 상암동까지 왕복 버스, 지하철을 번갈아 타면서. 눈이라도 한번 내리는 날엔 의정부에서 나가는 10-1 마을버스 뒷문이 얼어서 안 닫히는 거야. 그럼 매서운 바람이랑 눈발이 버스에 그대로 들어와. 모두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빽빽이 서서 그것들을 그냥 다 맞아. 삐삐삐. 얼어버린 뒷문을 닫으려는 소리, 결국 닫지 못하고 다음 정거장에서 더 이상 타긴 힘들 것 같은데. 다리 하나를 밀어 넣는 여학생을 끌어주기도 해. 거기에 갇힌 우리들은 다 같이 쪄진 떡처럼 같이 엉켜 붙어. 버스에서 내리고 도봉산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땐 손발이 다 얼어서 따뜻한 커피가 간절해. 자판기 커피가 200원, 따뜻한 캔커피는 700원. 레쓰비 캔커피. 그게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돈을 아껴야 되니깐. 한 달에 한 번만 레쓰비를 마시고, 일주일에 2-3번은 자판기 커피를 마셨어. 한 달 용돈이랄 것도 없이 그냥 아꼈던 시절이었지. 


그 거지 같던 회사를 나오고, 그다음 회사는 그래도 200만 원 초반을 주는 곳이었어. 근데 미친 듯이 야근을 시키는 거야. 밤낮으로 전화 오고, 뭐 내가 열심히 하니깐 나한테 다 맡긴다나. 기분이 좋은 말인 거 같은데 일은 계속 내가 다 하는 기분 있잖아. 그래도 3년 차 되니깐 200만 원 후반대가 되고, 저금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지. 그때부터인가 수면제를 먹었어. 시도 때도 없이 메일 알람, 카톡으로 일 문의가 오니깐 잠이 들어도 2시간 단위로 깨더라고. 그래도 약 먹으면 3시간씩은 자니깐. 그때 가끔 만나던 친구들이 나보고 그 일 그만하라고. 나보고 사람이 변한 거 같다고. 예민해진 거 같다고. 크게 싸워서 지금 아예 안 보는 친구도 많지. 근데, 걔들이 뭐 내 인생을 아냐? 모르잖아. 난 열심히 살았던 거야. 나 집 사야 되잖아. 계속 기숙사, 고시원, 지하 월세를 전전하고, 2년마다 옮겨 다녀야 되고. 나 그러고 살았잖아. 나라는 게 자꾸 분리되잖아. 자기들이 그거 아냐고. 


난 뚜렷한 목표가 있으니깐 뭐 상관없었어. 청약도 계속 부었고, 서울 쪽에서 너무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LH 사이트랑 계속 들락날락했거든. 효창공원 쪽에 25평에 7억짜리가 떴더라고. 구경이나 하고, 상담 좀 받아볼 겸 주말에 모델하우스를 찾아갔지. 줄이 어찌나 길던지. 2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들어가서 보니깐. 내가 이제까지 본 집 중에 제일 좋더라. 베란다는 기본 확장, 드레스룸, 풀옵션 추가하면 양문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티브이까지. 몸만 들어가면 되더라고. 2층 대기실에서 무료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상담을 기다렸지. 번호 대기표 순서가 되고 상담을 받았는데, 결혼도 안 했고 청약을 8년 부었어도 1순위는 아니래. 신혼부부거나, 애가 둘, 셋은 있어야 우선순위가 높고, 아니면 청약을 한 30년 부어야 된다고 하더라고. 계약금 10프로 7천만이 필요하고, 그 이후부터 1년에 2번씩 5천만 원씩 내야 되고, 대출은 50프로만 가능 그것도 유이자. 경기도랑 조건이 아예 다르더라고. 경기도는 계약금만 내면 대출은 무이자로 100프로 나와서 내 집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든. 블랙 셔츠를 입은 상담사는 안경을 치켜세우면서 대부분 부모님들이 많이 지원해 주시니 가능할 거라는 소리를 하더라고. 커피를 쥐고 있던 손이 나도 모르게 컵을 뭉개서 커피가 내 손으로 죄다 흘렸어. 눈꼬리가 올라간 상담사는 휴지를 건네면서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는데. 그 컵을 상담원한테 던질 뻔했잖아.


아, 나 실은 오늘 경기도 양주에 있는 아파트 계약했어. 흐흐. 역사적인 날이지. 서울에서 멀긴 해도 지금 엄청 뜨고 있는 동네라서. 있는 돈 보태고, 대출을 끼긴 했지만. 대중교통으로 좀 멀긴 한데, 집도 된 김에 차도 할부로 뽑아볼까 해. 집 사는데 돈을 다 써서 앞으로 또 많이 아껴야겠지만. 기분이 좋아서 아, 옛날 친구들 생각도 나고. 친구들한테 술 산 지도 오래되고 해서. 너네들이 생각나는데 지수 네 이름이 먼저 딱 보이는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지수야, 지수야, 듣고 있니? 


B는 뜨거워진 오른쪽 귀 대신에 왼쪽으로 핸드폰을 옮기면서 화면을 쳐다보았다.  핸드폰 화면은 바탕화면이었다. B는 계속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독립출판물로 출간된 [푸른 파장]을 연재합니다. 

*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인용 시, 표기부탁드립니다.  

* 책 구매 링크: https://linktr.ee/wow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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