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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푸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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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Jan 13. 2023

어느 날 나의 어린시절이 내 옆을 지나갈지도 몰라.

엽편소설 #1


가자미처럼 눈을 뜨던 남자는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옆 인도를 청소하는 청소부도 그중에 한 명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멀리서부터 느리게 걸어오는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느리다고 그렇다고 빠르다고도 할 수 없는 일정한 속도로 걸어오는 남자, 얼굴을 마주쳤을 때는 생각보다 젊은 남자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내 쪽에서 놀랬다. 얇고 긴 눈에 동그란 안경을 써 긴 눈이 안경 밖으로 살짝 삐져나왔나 싶은. 마스크는 코까지 올려져 있고 헬멧은 이마까지 푹 덮고 있어 얼굴에 눈만 존재하는 신인류처럼 보이는. 위, 아래 지나치게 밝다 싶은 형광색 노란색 작업복은 품이 커서 그런지 그를 한층 더 둔해 보이게 만든다. 왼쪽에는 주황색 쓰레기 바지를 오른손에는 플라스틱 초록색 빗자루를 들고 좌, 우를 왔다 갔다 하면서 걷는다. 얼마 전 뒤엎고 새로 깐 인도는 이미 깨끗했고, 그 흔한 낙엽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남자는 오른손에 쥔 플라스틱 초록색 빗자루를 땅에 살짝 끌기만 할 뿐 바닥을 쓸겠다는 의지는 어디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오기 전 이미 다 쓸어버린 거리를 마냥 반복해서 걷고만 있는 것일 수도. 그 남자 옆을 생기를 가득 머금은 남자아이가 재빠르게 뛰어 지나간다. 볼은 추위에 새빨갛고 모자, 장갑하나 끼지 않은 외투조차 잠그지 않은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어딘가에 기다리고 있다는 듯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뛰고 있다. 청소부의 어린 시절도 저처럼 생동감이 넘쳤을까. 세상을 막 끝낼 것처럼 걷는 발걸음은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을까. 우린 각자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의 나로 살고 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나의 어린시절이 내 옆을 지나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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