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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May 16. 2024

커피값이 올라도 카페에 갈 것이다.

자주 가는 카페가 생겼다. 일주일에 평균 두세 번 정도는 이곳에 들른다. 하루 한 잔은 무조건 라테를 마셔줘야 하는 내가 나름의 검증의 검증을 거쳐 정착한 곳이다. 지금도 그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퇴사한 지 어느덧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관두고 나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실컷 하면서 살 줄 알았다. 아내도 당분간은 아무 걱정 없이 쉬라고 했으니 내게 거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다. 딱 3주 정도. 아침에는 요가로 몸을 돌보고, 오후에는 독서와 글쓰기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내가 꿈꿨던 일상적인 삶 말이다. 복권 당첨자도 아니고 당장 다음 달에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도 아닌데 마치 걱정이라는 건 한 톨도 없는 그런 인생처럼 잉여롭게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런 이상적인 일상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늦게 잠드는 것이 점점 습관이 되더니 밤낮이 완전 뒤바뀌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처럼 하루를 살고 있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시작하는 하루는 하염없이 짧기만 해서 나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내려간다.


  우울증은 우습게 볼 병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내 삶을 지탱하던 기둥들을 갉아먹으려고 했으니까. 너무 쉽게 하루를 통째로 내어주고 나니 일상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짐했던 모든 루틴이 무너졌음에도 유일하게 내 곁을 지켜준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커피'였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마시는 아이스 라테 한 잔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 때가 되면 복용해야 하는 약처럼 나는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목으로 넘긴 커피 한 모금은 식도를 통하지 않고 바로 혈관 속으로 흡수되는 느낌마저 든다. 마치 더는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듯 달콤하게 내게 속삭이면서. 나는 이렇게 오직 커피 한 잔 마시겠다는 열심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하루 한 잔씩 커피를 마시다 보니 이왕에 마시는 거 좀 더 맛있는 라테가 마시고 싶어졌다. 맛집을 찾아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몇 군데 가보고 포기했다. 기대했던 맛이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커피의 맛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벼이 기댈 수 있는 쉼터 같은 곳이 더 필요했나 보다. 언제든지 내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올 수 있는 그런 곳. 아주 적은 에너지만 있어도 도착할 수 있고, 항상 내가 앉을 자리가 비어 있는 이런 곳 말이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이 카페에 오늘도 와서 앉아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대단한 맛집도 아니지만 가깝고 편안한 이곳이 마음에 든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가격도 적당해서 내 영혼이 숨 쉴 틈을 찾기에 충분하다.


  원두 가격이 오를지 모른다는 뉴스를 보았다. 영세한 업장부터 타격을 받게 될 테니 나의 아지트 카페 역시 값이 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당분간 이곳을 애용할 예정이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자리. 여기서 마시는 얼음 가득한 라테 한 잔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깨어 있음을 의식하도록 도와주는 나의 친구. 한 잔의 커피는 오늘도 이렇게 나와 마주 앉아있다. 짧은 하루일지라도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네가 있어 고맙다. 내일도 이 자리에 너와 함께 앉아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남은 라테 한 모금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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