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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Sep 09. 2024

반가운 가을비

비 맞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빗물에 몸이 젖는 건 딱 질색이다. 옷도 옷이지만, 특히 신발이 젖어 발이 축축해졌을 때의 그 찝찝함은 상상도 하기 싫다.


외출하기 전, 항상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비가 온다고 하면 나갈 생각을 접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때는 우산을 꼭 챙기기 위해서다. 핸드폰을 놓고 나가는 일은 있어도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비 소식이 없었음에도 비가 올 때나 분명 적은 양만 온다고 했는데 예상외로 퍼부을 때가 문제다. 우산이 없으면 꼼짝없이 다 젖는다. 우산이 있더라도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면 신체 어느 한 부위는 꼭 축축해지고야 만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점심 약속이 있어 식당을 찾았는데 주차장이 식당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가랑비처럼 내리던 비는 내가 주차를 하고, 식당을 향해 걸음을 떼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차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빗발이 얼마나 거세던지 우산을 썼음에도 한쪽 어깨가 다 젖어버렸다.


최대한 종종걸음으로 걸었더니 다행히 신발은 젖지 않았다. 이게 어디냐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어 본다. 식당 안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빗줄기는 여전히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나가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하늘색이 온통 회색인걸 보니 쉽게 물러날 생각은 아닌 듯했다. 


비 오는 날을 무척 싫어하는 나이지만, 우습게도 요즘은 비를 기다린다. 올여름이 너무 더웠기 때문일 테다. 가을이 올 듯 말 듯 간을 보는 상황에서 시원한 가을비가 쏟아지길 바라고 있다. 그래야 늦더위가 더 이상 기승을 부리지 못하고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서울은 연 이틀 비가 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아닌 오락가락하는 비였다. 한번 쏟아질 때 제법 굵게 내리기도 했지만 여름 소나기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비다. 


비가 와도 장마철과 같이 습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의 비가 가을비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주말부터 다시 좀 더워질 듯하다. 아마도 이번 여름의 마지막 고비가 아닐까 싶다.


조만간 비가 시원하게 내려 준다면, 그때야말로 더위가 안녕을 고하며 완전히 물러나는 작별의 시간이 되겠지. 비 오는 것도 비 맞는 것도 싫지만, 무더운 여름과 이별할 수만 있다면 가을비는 언제든 환영이다. 비가 그쳤어도 구름 낀 하늘은 해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다. 불어오는 밤바람에 선선한 가을의 향기가 묻어난다.





*사진출처: Photo by Alex Dukha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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